[동물학자의 인간 견문록] 국가미래전략청이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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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35면

나는 지금 ‘FEW’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이제 겨우 얼개를 엮은 수준이면서 책 팔아먹을 속셈부터 내비치는 게 부끄럽긴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 주책을 무릅쓰고 내보인다. 나는 21세기에 가장 부족해질 자원으로 식량(Food), 에너지(Energy), 그리고 물(Water)을 꼽는다. 이는 대부분의 미래학자도 공감하는 바이다. 이 셋을 이리저리 나열하다가 우연히 이들의 첫 글자를 합치면 ‘적다’ 혹은 ‘거의 없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인 ‘FEW’가 된다는 걸 발견했다. 부족한 자원과 무한한 소비욕망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경제활동이라면 21세기 경제의 실마리는 당연히 이 세 자원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06년 11월 세계적인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현재 상태의 남획과 오염이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해산물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에 세계적으로 생산량 자체가 줄고 있는 데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대국들의 육류 섭취가 늘면서 사람이 먹어야 할 곡류가 가축사료로 변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체에너지로 각광받는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곡류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앞으로 정말 먹고살 일이 걱정인데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올두바이 이론(Olduvai theory)’의 주창자 리처드 덩컨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시작된 산업문명사회는 끝내 10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화석연료의 채굴량이 수요에 못 미치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그가 계산해낸 해가 바로 지난해, 2007년이었다. 그는 머지않아 대규모 정전을 시작으로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걷잡을 수 없는 붕괴가 시작되어 2030년께면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설령 그의 예측이 그대로 적중하지 않더라도 대체에너지의 개발이 시급한 건 분명하다.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물을 차지하기 위해 늘 치열하게 경쟁하며 산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는 석유를 놓고 적지 않은 전쟁을 치렀다. 나는 21세기에는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물 전쟁은 석유 전쟁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석유는 모자라면 다른 연료를 찾으면 되지만 물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미 20억 명 이상의 인구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원활한 물 공급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무려 22조6000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다. 물을 더 이상 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지금쯤 내가 적어도 20~50년 정도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50개 국가들은 미래전략청에서 ‘호주2020’ ‘일본2025’ ‘영국챌린지포럼 2030시나리오’ 등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국정을 운영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수위원회가 기껏 5년을 내다보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부르짖던 196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05년 12월 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한나라당 후원으로 ‘국가미래전략청 설치’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축사를 했고 강재섭·이상득·박희태 의원 등도 참석했다. 2007년 10월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적자원포럼 2007’에서 기조강연을 한 제럼 글렌 세계미래의회 의장은 “자원이 부족하여 대외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한국이 미래전략 전담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하지 않으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인수위원회에서 국가미래전략청에 관한 논의가 있는지 궁금하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미국미래연구소의 웹페이지(www.itft.org)나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이 운영하는 가상공간 두뇌집단의 웹페이지(www.techcast.org)를 방문해보라. 그들은 지금 정보기술(IT)산업이 15년 내로 문을 닫고 향후 20~30년간 환경산업과 에너지산업이 세계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는 트랜스 휴머니즘, 인공생물 디자인, 스마트 로봇, 원격의료 등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데 우리는 겨우 4년 동안 운하 팔 생각이나 하고 있다.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선진 한국을 위한 전략을 구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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