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2월] 장원 이태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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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떨려서 연습한 게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2월 시조백일장 장원작 '강'을 쓴 '예비문인' 이태순(44.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복지리)씨는 "혹시나 해서 장원 당선 인터뷰 연습까지 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머리 속이 텅 비어버렸다"고 말했다. "원래 말을 잘 못하는 편이다. 못다한 말들을 풀어낼 수 있어서 글쓰기가 좋은 것 같다"는 '변명'이 서투르게 이어졌다.

이씨는 문학수업은커녕 습작품을 돌려볼 문우 하나 없는 철저한 독학 경험을 소개했다. 뒤늦게 문학소녀의 꿈을 이뤄보기로 한 이씨는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윤금초씨가 쓴 시조이론서 '현대시조 쓰기'를 혼자서 공부하며 서점 순례에 들어갔다. 닥치는 대로 시조집들을 독파했고 틈틈이 습작했다. 이씨는 "유재영 시인과 박기섭 시인의 시조집을 특히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잠결에 떠오른 시상을 잊지 않고 메모하고 낮시간에 떠오른 시구들은 수시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이씨의 시심은 고향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발동하는 듯하다. 이씨는 "꿀밤나무 숲과 숲이 바람에 날리며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산 밑 흙과 냇가 등 고향 경북 문경의 모습을 꿈속에서 가끔 본다"고 말했다. 고향의 정경은 이씨가 시조를 쓰기 전에 항상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전화 인터뷰가 진행되며 한결 차분해진 이씨는 "내 인생의 등불을 받은 것 같다. 앞으로 길이 환해질 것 같다"며 '정돈된' 소감을 밝혔다. 물론 이씨는 정식으로 등단해 좋은 시조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 당장 이씨의 마음을 붙드는 것은 "조였다 푸는 정형의 틀 속에 하고 싶은 얘기를 함축해 표현하는 시조쓰기의 재미"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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