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통신>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佛서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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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파리에서는 얼마전 동반자살한 여중생과 의학도의 나이를 초월한 사랑얘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13세를 갓넘긴 여중학생 아망딘과 24세의 의학도 파트릭이 동반자살한 것은 지난 8일 오후11시.
두 남녀는 파리발 부다페스트행「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열차가 달리는 차가운 철로위에 손을 꼭 잡은채 함께 몸을 던졌다.
현실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도,함께 사는 것도 용납받지 못한 남녀는 내세에서 진실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아망딘은 8년전에 이혼하고 재혼한 엄마.두 오빠와 같이 프랑스 동부의 낭시라는 소도시에서 자랐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을 한 그녀는 주말에만 집에 오는 것이 허락됐다.엄마와의 대화는 말다툼으로 끝나고 파리에 있는 아빠가 그리워지곤 했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사회의학을 전공하는 의학도 파트릭이 1년전부터 일요일마다 재미삼아 가르치는 영어수업뿐이었다.
파트릭은 자신의 전공인 사회의학의 영향으로 불우하고 연약한 소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됐고 부정(父情)을 그리던 어린 소녀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끌려들어 갔다.
지난해 6월부터 파트릭은 매주 금요일 기숙사생활에서 해방되는아망딘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고 차츰 두 남녀는 사랑의 싹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춘기 소녀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진실한 사랑을 인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기숙사를 탈출하는가 하면 손목의 동맥을 끊으며 두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
가정문제와 사춘기의 정신적 불안을 피해 파트릭의 품안에 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남녀는 불행을 서로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이성적 판단이 흐려졌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영원한 동반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망딘의 나이가 너무 어려「미성년자 유괴」라는 현행법이 결혼을 가로 막았다.
아망딘은 더 이상 숨막히는 기숙사와 가정을 버틸 수 없었으며파트릭도 감정을 억제하기에는 이미 깊이 빠져 있었다.
8일 오후.
프랑스에선 보기 드문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었다.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아망딘은 파트릭에 의지하며「오리엔트 익스프레스」號에 뛰어들었다.
아망딘과 파트릭의 두 가정은 둘을 화장하고 합장키로 했다.
동반자살한 철길에는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결혼적령기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야타族」이라는 신조어가 판칠 정도로 사랑의 의미가 실종된 우리 사회가 이 철없는 남녀의 순짐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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