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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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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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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가을 프랑스의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하나를 현실로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장소는 이집트 북부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 앞 바다. 7m 깊이의 해저에서 발굴한 것은 전설 속의 ‘파로스의 등대’ 잔해였다.

등대는 BC 250년 무렵 이집트의 지배자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지시에 의해 항구 부근의 작은 섬 파로스에 세워진 것.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35m의 등대 꼭대기의 탑에는 거대한 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탑에는 불을 피우는 설비와 거대한 반사거울이 있었고 그 불빛은 40여㎞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등대는 고대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지만 1100년과 1307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알려져 왔다.

프랑스 발굴팀은 해저에서 높이 4.5m, 무게 12t에 이르는 여신상을 비롯한 등대의 잔해 수백 점을 건져 올렸다. 실제로 등대가 있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파로스의 등대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다면 중세에서 목탑으로 가장 높은 건축물은 한반도에 있었다.

경주 황룡사(진흥왕 때인 579년 건립)에 선덕여왕 때(645년) 세워진 9층 목탑이다. 높이(80m)는 초석 속에 있던 사리함 안쪽에 새겨진 글을 판독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목탑인 중국 응현의 목탑이 67m 높이이니 그 규모와 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으로 많은 성을 잃자 주변 9개국을 복속하게 한다는 염원을 담아 건립했다. 탑은 1238년 몽고 침략 때 사찰과 함께 불타 버렸지만 삼국 통일(676년)은 이뤄졌으니 기본 임무는 다했다고 할까.
 
현대에 가장 높은 탑은 한국의 삼성물산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짓고 있는 버즈 두바이(Birj Dubai:두바이 탑)다.

AP 통신은 6일 이 건물이 158층 598.5m로 기록을 경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해 7월 21일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타이베이의 101빌딩(508m)을 제쳤다. 내년까지 지상 160층 이상, 높이 800m 이상으로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너무 높은 건물은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보다 높은 탑은 당분간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더 높이 쌓아 올리려는 인간의 현시욕을 경제성의 벽이 막을 수 있을까.
 
인간의 끝없는 도전에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각자의 마음속 나눔과 베풂의 탑도 더 높게 높게 쌓아 올렸으면 하는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지 싶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