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스포츠로 출발 프로化 눈앞에-한국농구 9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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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한국의 농구역사는 어언 92년에 이른다.
1903년 구한말 서울에 황성기독교청년회(YMCA)가 창립되는 것과 동시에 최초로 농구가 수입됐다는 것이 농구협회 공식기록이다. 최초의 농구 지도자는 미국인 필립 질레트로 기록돼 있고 첫 공식경기는 1907년 YMCA에서 치렀다고 한다.
중국은 한국보다 5년이 빠른 1898년 톈진(天津) YMCA에서 미국인 세일러에 의해 농구가 전파됐다.
한국은 중국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농구가 발전돼 왔다.일제시대 명문학교 엘리트들이 즐기는 고급 종목으로 발전해 온 것이 한국농구의 본류인 반면 중국은 20년대 중반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홍군(紅軍.인민해방군)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보급이 이뤄졌다.
이 당시 중국 농구에 대한 기록이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의 저서『중국의 붉은 별』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군대간 대항전을 활발히 치르면서 「내수형」발전을 이룬 중국과달리 한국은 제국주의 압제하에 일본열도의 유수한 농구팀들과 겨루면서 강한 근성,뛰어난 경기운영능력과 정확한 슛이라는 세가지개성을 발전시킨다.
한국농구의 발전 동인(動因)은 본질적으로 국가대항전이다.역사적 배경이 어느 나라와도 다른 한국만의 농구를 발전시켜온 셈이다. 한국의 농구가 이처럼 개성적이고 1백년 가까운 역사를 축적해가고 있다면 마땅히 이 역사를 기록하고 자료를 보전하기 위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귀중한 기록과 자료가 소홀히 관리되고 있음은 안타까운일이다. 농구인들의 역사인식을 나타내주는 자료라고는 지난 89년 발행된『한국농구80년사』라는 책 한권뿐이다.
미국이 보유한「농구 명예의 전당」은 미국농구역사의 살아있는 기록이자 농구박물관으로서 단순한 구경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미국인들은 이곳에서 농구종주국의 긍지를 느끼고 농구에 관한한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자존심을 키우고 있다.
폭발하는 농구열기,청소년들의 열광은 이제 한국에도 「명예의 전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반드시 명예의 전당이 아니면 어떤가.한국농구의 전통과 긍지를느낄 수 있고 선배 농구인들의 땀과 눈물.체취를 느낄수 있는 그러한 자리라면 좋다.
농구도입 1백주년을 눈앞에 두고 때마침 태동하는 프로농구와 보조를 맞춰 「한국농구 명예의 전당」을 일으켜세울 시기가 바로지금 아닌가.
許珍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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