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선 없어 한밤 낚싯배로 185km 뱃길…해양요원 목숨 걸고 이어도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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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섬 이어도. 2003년 6월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세워진 곳이다. 기지엔 기상·해양·환경 관측을 위한 자료들을 수집·전송하는 첨단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이어도 기지는 국제법상 우리 수역에 있으나 한·중·일 3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10t짜리 소형 낚싯배로 정기적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 도두항에서 기지까지 185㎞를 목숨 걸고 소형 낚싯배로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해양기지를 관리하는 국립해양조사원의 운영요원들이다. 파도에 휩쓸려 없어지거나 고장 난 장비를 수리하고 교체하기 위해서다. 해풍에 닳은 태극기도 새것으로 갈아줘야 한다. 기지에서 이틀 정도 머물며 장비를 점검하는 이들은 일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한밤중에 출발해 깜깜한 바다를 7시간 정도 헤쳐나간다.

 요원들이 4년6개월째 소형 낚싯배를 빌려 타는 이유는 전용 선박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고 위험성이 크다. 특히 제주~이어도 해역은 중국 어선들이 집단 조업을 하는 해역이어서 충돌 사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배에는 국립해양조사원 공무원과 기술자·연구자 등 12~15명이 타고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첨단 장비와 소모품이 함께 실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요원은 “추위와 장거리 야간 항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출항 전 소주를 마신 다음 배를 타야 그나마 잠든 채 버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파도가 심할 땐 배가 뒤집힐까 두려웠다” 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원장 심동현)은 지난해 해양기지 전용선박(70t급, 최고시속 80㎞) 구입 예산 75억원을 기획예산처에 신청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당했다. 2003년 12월 7일 남극 세종 과학기지에서 근무하던 전재규 연구원(당시 27세)이 구조 보트 전복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던 사고가 재연될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당시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쇄빙선을 도입했다.

 이어도 기지를 위한 전용선박이 필요한 이유는 이곳에 접안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국 선박의 불법 접근을 우려해 접안시설을 만들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양조사원이 갖고 있는 156t급 관용선박(바다로 3호)으로는 이곳에 접근하는 게 힘들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접근이 가능한 전용선이 없는 상황에서 선택 가능한 대안은 낚싯배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비용도 관용 선박보다 낚싯배가 덜 든다. 도두항에서 이어도까지 낚싯배 이용료는 출항당 500만원. 반면 지난해 초 관용선박을 시험 운항할 때 들어간 연료비는 1500만원였다.

  운영요원들은 지난해 한 해 동안 낚싯배를 이용해 8차례 기지를 방문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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