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프로 의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68). 일본 야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국내 야구팬 가운데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현역 시절(1958~74)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수퍼스타였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서 최강의 자이언츠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자이언츠의 종신 명예감독 겸 아테네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17년간의 선수생활 중 수위타자 6회, 타점왕 5회, 최우수 선수 5회, 홈런왕 2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했다. 홈런도 9회말에 잘 때렸다. 명승부를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투수들은 가급적 승부를 피하려 했다. 고의 사구가 잦자 그는 맨손으로 타석에 선 적도 있다. 그래도 투수는 볼넷을 던져 맨손의 나가시마를 1루로 내보냈다.

그는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그렇다고 승부에만 집착한 게 아니다. 팬들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더 투철하다. 그가 지향하는 야구는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야구다.

돈내고 야구장에 온 고객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어떻게 해야 관중의 시선을 끌 수 있을지 골똘히 연구했다고 한다. 예컨대 선수 시절 늘 한 치수 큰 헬멧을 쓰고 타석에 나왔다. 힘껏 헛스윙할 때 헬멧이 훌렁 벗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팬들은 그 모습에 열광했다. 관중을 즐겁게 하는 데 프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프로의식은 일상 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자신의 직업을 서슴없이 '나가시마 시게오'라고 할 정도다. 각종 서류의 직업란에도 '나가시마 시게오'다. 일본의 국민영웅이 된 자신이 곧 천직이라는 자신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직업란엔 아무나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배짱만으론 턱도 없다.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피나는 노력과 자기관리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진정한 프로다.

어느 회사에서 얼마를 받고 무슨 일을 하느냐가 직업의 전부는 아닐 게다. 나가시마에게 직업이란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직업을 가리키는 영어 중 vocation은 '소명(召命)' '신의 부르심'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한다. 신이 점지한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청년실업 시대에 직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