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장하다, 이승만" 청각장애 딛고 강자 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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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주가 미국프로골프협회(PGA) Q스쿨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1999년.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귀감이 되던 한국인 후배가 있었다. 당시 19세 나이에 미국 무대를 정복하겠다고 나선 이승만(24)이다.

이승만은 청각장애인이다. 영어는 물론 어떤 언어도 할 수 없지만 용기로 뭉친 그의 모습은 최경주에게 충분히 자극이 됐다. 실력도 뛰어난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데이비드 레드베터는 "3년 안에 PGA 투어에서 우승할 수 있는 재목"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번번이 Q스쿨 최종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최경주는 "이승만을 지켜보라. 반드시 대성할 선수"라며 여전히 칭찬한다. 공과 옷 등 골프용품도 이승만에게 지원하고 있다.

듣지 못하는 골퍼. 그 이승만이 진가를 보였다.

그는 22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사우자나골프장(파72.6천3백73m)에서 막내린 유럽프로골프협회(EPGA) 투어 칼스버그 말레이시아오픈에서 7언더파 2백77타로 공동 8위에 올랐다. 3라운드까지는 12언더파로 단독 선두였다. 그러나 전날 비로 순연된 3라운드 11개홀과 4라운드를 이날 무더위 속에서 한꺼번에 치르느라 체력이 달린 듯했다. 우승은 놓쳤지만 그는 몽고메리(스코틀랜드).해링턴(아일랜드) 등 EPGA 강자들을 눌렀다.

이승만은 1m83㎝의 키에 드라이버로 3백야드 이상을 치는 장타자다. 90~97년 국내 주니어대회에서 14승을 했고, 98년 한국아마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미국에 갔다. PGA 문턱에서 계속 좌절했지만 지난해 말 아시아프로골프협회(APGA) 퀄리파잉스쿨에 수석 합격, 유럽투어를 겸해 열린 이 대회에 나가게 됐다.

"필드에 서면 청각장애라는 핸디캡이 사라져서 좋다. 청각장애인 특유의 집중력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가 보다." 이승만의 PGA 도전은 계속된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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