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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생각하며>11.정신지체아학교 성베드로 朴英姬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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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포레스트 검프의 눈을 통하여 한번 바라본 다음부터의 이 세상은 그 이전과 같을 수가 없다.』 이것은 윈스턴 그룸作 명랑소설『포레스트 검프』의 책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다.이 소설의 동명(同名)영화가 지금 온 세상 방방곡곡 극장에서 대히 트를 치는 바람에 이 영화를 제작한 파라마운트사엔 사상 최대의 수입을 긁어다 주고 있다.관객들이 정신지체아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눈을 통하여 단순하고 맑고 운수좋고 신나는 세상을 한번 바라보려고 관람료를 아끼지 않는 까닭이리라.
포레스트 검프는 이 소설의 첫 머리에서 말한다.『나는 날 때부터 백치(白痴. idiot)다.내 지능지수(IQ)는 70에 가깝다.이 숫자대로라면 나는 어쩌면 치우(痴愚.imbecile)정도는 되는지도 모른다.혹은 우둔(愚鈍.moro n)수준까지육박할 수도 있다.』 IQ 수치로 표시하자면 백치는 20이하,치우는 25~45,우둔은 50~70이다.그는 또 말한다.『백치라는 것은 화려하게 꾸민 초콜릿 상자는 확실히 아니다.그러나 적어도 나는 지루한 생을 살아 오진 않았 다.』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정신지체아(精神遲滯兒)를 위한 특수교육기관인 聖베드로학교.정신지체아란 쉽게 말해서 IQ가 75이하인 사람을 말한다.일본 문부성은 정신지체자를「여러 가지 원인으로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해서 이때문에 지 적 능력이 열등하여 자기 신변 일의 처리및 사회 생활에의 적응이 곤란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聖베드로학교의 3백60명 학생들의 지능지수는 대부분 50이하라고 한다.이 학교의 이론적 교육성과기대치는 초등부.중등부.고등부 이렇게 12년을 공부시키면 보통 아이들의 국민하교 2학년 수준이 되는 것이다.
박영희(朴英姬)씨는 이학교 초등부 2학년 담임교사다.이 대담에는 교장직무대리 신성식(申星植)씨가 참석하여 여러 객관적 지식과 자료를 나에게 일러 주었다.정신지체아를 종전에는 주로 정신박약아(精神薄弱兒)라는 냉혹하게 들리는 이름으로 불러 왔다.
申교장은 정신지체자를「장애자」범주에 합류시키고 싶어한다.그래서정신지체자를 간간이「지능장애자(知能障碍者)」라고 부른다.그는 지능장애자야말로 모든 종류의 장애자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으로 동정받고 보호받아야 할 장애자라고 주장한다.
정신이 아닌 신체 장애자, 즉 지체부자유자.시각장애자.청각장애자는 의학및 첨단기술 덕택으로 정상인들과 거의 다름없는 직업활동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신체장애자들은 금후 특수 장치는 필요하겠지만 특수 교육기관에서 교육할 필요는없어져 가고 있는 현실 추세를 지적한다.앞으로 지식 정보산업이모든 생산활동의 중심을 명백하게 장악하는 때가 오면 돈벌이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더욱 더 두뇌 결함이 문제지 신체 결함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육체적 장애인이 정상인과 가장 다른 점은 외관이라고 申교장은주장한다.그대신 지능장애자는 외관은 정상인과 아무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멀쩡해 보인다.그래서 정신병의 일종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기가 일쑤다.
사회의 동정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배척까지 받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박영희씨가 애원하듯 나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장애자가 아닙니다.장애자라생각하지 말고 그냥 정신 기능이 약간 지체돼 있는 아이라고 여겨 주세요.
』 이 말을 듣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내가 申교장을 따라「지체아」대신「장애아」라고 부른데는 조금도 폭력적 고의가 들어있었던 것은 아니다.다만 나는 사회복지적 암시가 더 강하게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기에 지능장애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었다.그러나 박영희씨에게는 자기의 지체아 제자들이 냉혹하게 객관화돼도괜찮은 그런 존재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본능적 분별력이다.이 마흔 한살 난처녀선생님은 아무래도 이 아이들의 또 한 사람의 엄마임에 틀림없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권리를 찾으려고 애씁니다.
권리를 찾으려고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권리를 찾을 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입니다.누군가가 이들의 권리를 간수하고 보호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권리를 찾을 줄 모르는 사람」이란 표현이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이 표현에는 자기가 사랑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너무도 평화롭고 비탄적으로 설명하는 메시지가 차곡 차곡 들어 있다.박영희씨는 자기의「우리 아이들」을 외부 사람이「장애자」라고 잘못 부르기만 해도 그것이 그들의 삶에 곧바로 상처를 내는 짓이란 사실을 민감하게직시하고 있는 것이다.『혹시 선생님은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그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다고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하고 내가 물었다.이점에 대해 그는 전문 교사로 돌아가서 대답한다.
『아닙니다.이것은 철저한 교육 행위입니다.보통 아이들이 생득적으로,또는 생활 경험에서 저절로 알게되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오래오래 가르쳐야 알게 됩니다.추우면 옷을 입는다는 것도 모릅니다.그래서 집과 학교에서 교육 목표를 세워놓고 이것을 정식으로 가르칩니다.대소변을 못가리는 아이들에게 상황과 동작을 아주세분해서 반복해서 가르칩니다.오랜 세월이 걸립니다.교육이 아니라 생활 아니냐고 물으셨지만 실은 모든 것이 우리 학교에서는 생활이 아니라 오히려 교육입니다.
교육적 치수가 어디에나 들어가 있으니까요.우리 아이들은 생활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생활할 줄 모릅니다.그래서 생활에서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이 분명하고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있어야만 합니다.과자를 주면 보통 아이들은 많은 것을 집겠지요.우 리 아이들은 많다는 것을 몰라요.그래서 하나,둘 이렇게 세어보여 줍니다. 산수 공부입니다.』 ***말한마디에 1年 이 학교에는 산수라는 과목이 없다.
세는 수준에서만 가르치기 때문에 과목 이름이 산수가 아니고 수량이다.국어 과목 대신 언어 과목이 있다.물론 외국어는 가르치지 않는다.그런 아이들을 가르치자면 고생이 여간 아니겠다고 내가 위로하자 그의 말은 조금 전과 아주 방향이 바뀐다.현실을이야기하다가 다시「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야기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아주 똑똑해요.글도 쓸 줄 알고 수업 시간이 되면 자기 자리를 찾아와 앉을 줄도 압니다.가르치면 잘따라요.너무 잘 따라 줘서 그점이 가엾고 고마워요.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일반 아이들과 다를 뿐이에요.
「예」라는 말한마디를 가르치는데 1년이 걸리는 아이도 있지만성과는 반드시 나게 되거든요.
조기교육을 시키면 부정적 요소가 훨씬 더 잘 제거됩니다.이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입니다.어떤 동정보다도 똑 같은 사람으로 여겨주는 것이 이 아이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일 것입니다.사랑과 안정이 있는 가정을 가진 아이는 교육 효과가 훨씬 높게 나타납니다.』 박영희씨가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입학한 것은 그가 31세 되던 해였다.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그때까지 수예품 만드는 가내수공업을 경영하면서 동생 다섯명의 학비를 도왔다.우연한 기회에 그는 정신지체아를 가르치는 것으로천직을 삼겠다는 결심을 하곤 전공과목을 이쪽으로 택했다.정신지체자가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로 알려져 있다.약40만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부모들은 신체장애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자기 아이가 정신지체아라는 사실을 될 수 있으면 숨기려 한다.그래서 통계에 잡히는 숫자는 실제보다 훨씬 적은 7만명 정도다.
예수는 잃어버린 한마리 양의 비유를 했다.양 1백마리 가운데아흔아흡마리는 우리 안에 있으되 한 마리가 길을 잃고 헤맨다면그 한마리를 찾으러 나서지 않는 목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예수의 파천황적(破天荒的)인 논리다.
이것은 사랑에 관한 논리다.
사랑의 수량은 과학이나 상업의 수량과는 정 반대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완전한 낭비다.아무리 가르치더라도 모든 직업이 점점 전문화돼가고 있는 지금 세상에 이 사람들은 아무 경제적 기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사랑이란 경제적 가치가 도외시돼 있을 때만이 참다운 것인가 보다.1%가 99%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사랑의 수량적 표현이다.예수가 세상에 온 것은 1%의 잃어버린 양을 위함이다.그것이 사랑이다.인간이라는 것은 여러 겁을 두고 삶과 죽음의 윤회를 거치며「사랑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진화해 가는 그런 존재는 아닐까.박영희씨는 이 점에서 다른 사람들 보다 한 걸음 앞서 가고있다. ***어린양을 찾아서 『나는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가르치는 일이 즐거움을 준다기보다 우리 아이들이 직접 즐거움을 줍니다.걔들은 천사예요.나는 그들과같이 있을 때 그들 수준으로 내려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거기에서 나는 평안을 얻습니다.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함께 부를 때 그렇습니다.다들 노래를 너무 너무 잘해요.내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나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부모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보살펴 주는 사람마저 하나도 없어지겠지요.』 박영희씨의 눈을 통하여「우리 아이들」도 똑같은 인간임을 본 사람은우리 마음을 사랑이라는 가장 고귀한 심리적 상태를 향해 단련시켜 주는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본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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