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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와 미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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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해 말 강우석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실미도' 촬영을 끝내고 출연진과 충무로 근처에서 소주 한잔 하는 조촐한 자리였다. 원래 성격이 차분한 그였지만 이날은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이번 영화는 좀 다릅니다. 예감이 아주 좋아요."

평소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안성기씨도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다며 거들었다. 명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안성기.설경구 같은 듬직하고 탄탄한 배우들이 열연했으니 대박은 떼어 논 당상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물론 인사치레 성격이 강했다. 속으로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자화자찬이려니 했다.

그러나 이게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 영화의 모든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실미도'는 한국 영화사를 새로 썼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관객 1천만명의 꿈을 단숨에 이룬 것이다. 이런 고수들의 내공(?)을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한 짧은 식견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가슴이 뿌듯해 오는 원인 모를 희열감은 이 부끄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나뿐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가 내 일처럼 즐거워 하고 있다.

'실미도'의 성공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소재 선택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북파 공작원 이야기를 다루면서 동시대를 살았던 중.장년층이 처음부터 대거 몰렸다고 한다. 특히 힘이 빠지게 마련인 중반기 이후 영화와 실제 사이에 논란이 일면서 언론이 끊임없이 '홍보'를 해준 것도 큰 기여를 했다.

돈도 많이 들였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긍정적인 요인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475세대의 폭주 (輻輳)'를 꼽겠다. 1950년대 태어나 70년대 대학에 들어간 40대와 50대 초반. 10대와 20대에게 브라운관은 물론 웬만한 공연장까지 다 빼앗긴 이들이 갈 곳은 그간 술집 외에 별로 없었다.

노래방에서도 빠른 템포의 랩이나 힙합으로 무장한 386, 혹은 그 이하 세대에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더욱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은 결국 미사리로 쫓겨 갔다. 문화적 피난이랄까. 송창식이나 윤시내 같은 왕년의 스타들을 만나 상처받고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사리 부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더 이상 미사리에 안주하기를 거부했다. 미사리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들은 이제 당당히 서울로 재입성하고 있다. 미사리 근처에도 못 가본 방콕족들도 밖으로 나와 이들과 합류하고 있다. 이들이 문화 수용에 적극 나서면서 영화뿐 아니라 문화판 전체에 질풍노도가 일고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20일 나는 이 반란의 미풍을 느꼈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돔아트홀에서였다. 양희은.한경애.채은옥.신형원 등 70~80년대를 풍미했던 여가수 10명이 마련한 자선공연('보고 싶다') 때였다. 대부분이 40~50대인 아줌마.아저씨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환호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 감동은 지금 예술의전당 '맘마미아' 무대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아줌마 부대가 주력인 이들 중.장년 관객들은 연일 만원사례를 연출하며 아바를 합창한다. 이들은 다시 '태극기를 휘날리며' 문화의 대장정을 계속하고 있다. 예술의전당과 극장가를 넘어 이제는 대학로 쪽으로도 향할 태세다. 내친김에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를 만나는 '반란군'도 한 1백만명쯤 됐으면 좋겠다.

40~50대들이여, 이 반란의 공세를 늦추지 말자. 그리하여 20~30대가 장악한 사회의 주도권을 되찾자. 문화는 물론 정치.경제적으로도 이 사회의 진정한 주도세력이 되자.

유재식 문화.스포츠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