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조종사 유해송환이 남긴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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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동안 판문점에서 열린 미군 헬기 조종사 유해송환을 위한 北-美간 접촉이 북한의 요구로 공식적인 군사정전위 대표회의 형식이 아니라 편법으로 운영됨으로써 현재의 한반도 정전(停戰)체제의 평화체제 전환문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실수로 휴전선을 월경했다가 사망한 미군조종사의유해송환을 위해 세차례의 접촉을 가졌으나 이 접촉은 공식적인 군사정전위원회가 아니고 양측 군사대표들의 만남의 형태로 이뤄졌다. 북한이「정전위」란 말에 거부감을 보였고 미국은 유해송환에급한 나머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북한은 지난 91년3월 유엔군측 군사정전위 수석대표에 한국군장성이 임명된 후 한번도 정전위 본회의 개최에 응하지 않았고 일직장교회의 또는 책임연락관회의등 격이 낮은 회의에만 참석해 왔다. 이는 평화협정체제에 한국을 참여시키지 않으려는 전략에 따른 것.
그후 북한은 미국과 핵협상 과정에서 지난 50년대부터 자신들이 주장해온 미국과 북한간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본격 거론해왔으며▲지난 4월 정전위철수▲곧이어 판문점 인민군 대표부 설치▲중국대표의 철수등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치를 진행시켜왔다. 18일 열린 정전위 책임연락관회의에 나타난 북한 대표가 사망한 헬기 조종사 유해를 송환하기 위한 인민군과 미군의 직접 접촉을 다음날 가질 것을 제안한 것도 앞서의 조치와 같은의도에 따른 것.
북한은 이 자리에서 양측 대표단의 수석대표를 소장급으로 하고미군 이외의 정전위 대표단 참석을 배제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는 현재 정전위의 수석대표가 한국군 황원탁(黃元卓)소장으로 돼 있고 정전위에 소속된 미군 대표가 준장으로 계급이 낮은 것임을 의식한 것이다.
조종사의 송환이 다급한 미국으로선 북한의 이같은 주장을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우리 정부의 양해를 얻어 북한의 주장을 수용했다.다만 韓美 양국은 현 정전위 체제가 존속한다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 북한과 접촉하는 미군대표를 정전위 대표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결과 21일 미군과 북한의 접촉은 韓美의 입장에서 보면「정전위 대표회의」,북한 입장에서 보면「미군과의 직접적인 군사접촉」이라는 이중적 성격의 회의가 돼 버렸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주장을 상당히 받아들인 셈이며 이것이 나쁜선례가 될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정전위 철수를 감행하고 인민군 대표부까지 설치해 정전위가 사실상 와해상태인데 이번 사례는 이를 기정사실화할 위험이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유엔군과 북한 사이에 체결돼 있는 정전협정은 정전체제를 관리하고 협정 위반사례를 처리하기 위한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의 대화채널로 설치된 정전위원회 이외의 채널도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번 사례가 반드시 나쁜 선례가 될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68년 발생한 미군 함정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미군과 북한의 협상은 정전위원회를 통하지 않고 비밀협상으로 진행된 전례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례를 새관행으로 볼 필요는 없고 북한의 의도를차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미군대표의 정전위 대표임명)를 모두취했으므로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번 북한과 미국의 협상과정은 휴전이후 40년간 유지돼온 정전체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그 결과가 남북한이 서로 달리 주장하는 새로운 평화체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康英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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