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복원하려면 한·일 관계 개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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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의 후나바시 주필은 21일 도쿄 쓰키지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에서 경제를 제일 잘 아는 지도자가 한국에서 나온 만큼 ''이명박 이니셔티브''를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김현기 도쿄특파원]

21일 오후 도쿄 쓰키지(築地)의 아사히신문 사옥에서 만난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사히신문 주필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이명박 당선자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 총리 간의 전화통화를 첫 화제로 꺼냈다. 그는 당시의 자세한 상황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상호 방문 의사를 서로 확인하고 한.미.일 정상회담도 하자는 이야기로 화기애애했는데 통화가 끝날 무렵 이 당선자 주변 인사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고, 이에 후쿠다 총리를 포함한 일본 측 인사들이 박수로 응했다고 하더라. 이건 뭐 사전각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제까지 꽉 막혀 온 양국 관계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서로의 의지가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박수로 표현된 것 아니겠는가."

다음은 주제별 주요 일문일답.

◆한·일 관계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이후 3년 동안 일본을 찾지 않을 정도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태인데.

"두 나라 관계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양국 정상의 브레인들이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도자들의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 부분도 있지만 보다 깊은 원인이 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한 위협감의 차이, 한.미.일 공조체제의 상실이 구조적 원인이다. 최근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일.미.한'이 아닌 '일.미.중'의 3극 대화 체제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예전이라면 일본에서 '한국이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고, 한국이 동요하면 안 좋으니 그만두자'며 제동을 걸 텐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시점에 이명박 당선자가 취임하게 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부터 풀어나가야 하나.

"첫째, 한.일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6자회담의 틀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둘째, 양국 정상 간 교류를 중단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셋째는 한.일 협력을 평화유지활동(PKO)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유엔의 활동을 양국이 공동으로 하면 국제사회에서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고 전 세계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는 것이다. 한.미, 한.일, 그리고 미.일의 FTA가 갖춰져야 비로소 진정한 한.미.일 협조의 토대와 기둥이 완성된다. 이를 5년 내에 이뤄야 한다. 한국 입장에선 언젠가 통일이 이뤄질 때 떠안게 될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충격을 완충하는 효과도 있다."

◆한·미 동맹 회복

-이 당선자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시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노무현 정권 5년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동맹 신뢰도는 현저하게 손상됐다. 특히 한국의 '균형자론'은 미국으로 하여금 '동맹국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는 혼란에 빠지게 했다. 미국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통령이 이명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제 다시 한.미 동맹이 굳건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본다. 그만큼 타격이 컸다. 하지만 회복해야만 한다."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은 예전과 다르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미국은 앞으로 4~8년간 중동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로 인해 미국의 힘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북아 안정은 미국의 힘만으로는 실현이 안 된다. 한국도 일본도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내 생각에는 한.미 관계를 개선하려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일본 입장에서도 미.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선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제 단순히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의 양자 간 관계 강화로는 부족하고 한.미.일 간 동북아 협력이라는, '점'이 아닌 '면'이 중요하다."



한·미·일 협조 시험해보려
북 '6자회담 불참' 카드 쓸 수도

◆대북 정책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나.

"한국의 누가 지도자가 되건 파탄 상태인 북한의 실존적 위기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면서 비핵화를 유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대북 정책의) 선택 대안이 특별히 새로 생겨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둘째는 미국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문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북아에서의 (미군의) 군사.외교적 옵션은 한정적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압력에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북한은 '잘못하면 중국에 의해 지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즉 북한은 중국에 대해서도 일정한 발언력을 갖기 위해 핵을 갖는, 즉 단순히 미국 때문에 핵을 갖는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대북 정책은 '개입(engagement.포용)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는 힘들다. 다만 한국이 마치 북한의 변호인인 듯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원칙에 입각한 개입정책이 필요하다."

◆6자회담과 북한

-북한이 이명박 정권 출범 뒤 어떤 대응을 할 것으로 예상하나.

"먼저 북.미 협상에서 미국이 '너희 핵시설 리스트를 다 파악하고 있으니 순순히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데 대해 완강히 거부하며 6자회담에도 응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한국이 미국에 대해 '그러지 말고 북한을 다시 6자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걸 양보하자'며 유화정책을 취하고 나설지, 또한 미국이 어떻게 응할 것인지 등을 지켜볼 것이다. 역으로 미국이 그런 양보안을 제시할 때 일본과의 협조도 지켜볼 수 있다. 북한의 전략적 시험에 한국과 미국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북한도 유화노선으로 전환한 부시 정권이 남아 있는 1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오히려 기회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은 더 많은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해 부시 정권 아래서 양보의 극한점까지 끌고 간 다음 민주당 정권과 협상을 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도 어차피 중동에 발목을 잡혀 있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므로 군사적 옵션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군사적 옵션이 없는 미국은 종이호랑이라고 북한은 믿고 있다. 그러나 북한도 너무 과신하면 오산이 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옵션은 없을지 모르나 정치.외교적으로 철저한 압력을 가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 대통령 땐 아무것도 안 돼"
일 외교관·정치인 손 놓았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란다

-노무현 정권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내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곤란하긴 하지만 통일부가 힘이 너무 셌다. 외교부가 통일부 종속기관처럼 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한국의 외교관들은 세계 최고의 통찰력과 협상력.인간미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그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다. 외교부의 입지가 약하고 청와대.통일부가 세면 아무리 한국 외교관들과 만나 이야기해도 진척이 안 된다. 그러니 한.일 관계를 다루는 일본 외교관들은 2005년 이후 2년 정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정치인도 '그럼 노무현 때는 그만두자'고 해 2~3년간은 일을 전혀 안 했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라는 점은.

"이명박 당선자는 전후 한국의 지도자 중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최초의 지도자다. 그 강점을 살려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도 먼저 경제.비즈니스로 되살렸으면 한다. 이명박 당선자 같은 다이내믹한 불도저가 등장했으므로 한.일 비즈니스 협조라 할까…. 각각의 국가의 업무는 경제이며, 비즈니스라는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국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한.일 두 나라가 어떻게 협조해 풀어나갈지를 '이명박 이니셔티브'로 해결하면 어떨까 싶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클린 에너지 밸리'를 부산이나 일본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 같은 곳에 만들기를 기대한다."

◆후나바시 요이치는=일본 언론계의 대표적 외교 전문가로 1980~90년대 아사히신문의 베이징.워싱턴 특파원과 워싱턴 총국장 등을 지냈다. 올 2월에는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각국의 외교 비화를 파헤친 '김정일 최후의 도박'을 펴내는 등 10여 권의 저서를 냈다. 게이오(慶應)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올 6월부터 아사히 신문이 30년 만에 부활한 '주필'을 맡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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