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반값 화장품’으로 시장에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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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룡 더페이스샵 사장이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최근 출시한 향수 ‘오드람므’를 소개하고 있다. 해외 아웃소싱 강화 전략의 하나로,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調香師)에게 의뢰해 이 제품을 만들었다. [사진=안성식 기자]

더페이스샵은 이달 6일 창립 4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1816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려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화장품 업계 3위다. 신생 회사로는 놀라운 성적표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직접 화장품을 만들지도 않는다. 상품을 기획한 뒤 제조 전문업체에 의뢰, 주문자상표부착(OEM) 제품을 만들어 전국 570개, 해외 170개 매장에서 판매한다.

 사업 모델은 창업주 정운호(42) 회장이 1998년 미국을 여행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캐주얼 의류 브랜드 갭과 유럽의 H&M처럼 좋은 품질에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화장품 도매상으로 시작해 화장품 제조·판매회사인 쿠지인터내셔널을 경영하는 등 15년 이상 ‘화장품 밥’을 먹었다. 정 회장은 “비싼 음식이라야 맛있는 게 아니다.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으면 자연스레 고객이 몰릴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3년 서울 명동에 1호점을 열었다.

 더페이스샵의 가격은 당시 일반 브랜드의 절반 이하였다. 중간 도매상을 없애고 물건을 직접 기획하고 공급함으로써 가능했다. 1000여 가지 품목의 평균 가격은 4000~5000원. 전국 어디서나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에 판매했다. 기존 화장품 가게가 같은 제품도 값을 다르게 받는 데 대해 소비자들이 갖고 있던 불만을 해소해 줬다. 매장은 가맹점 위주로 운영하되 핵심 상권을 공략하는 전략을 써서 단시간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가게 자리를 보는 데 ‘직관’을 갖고 있는 정 회장의 입지 선정이 주효했다. 서울 명동과 대구 동성로 등 최고 상권을 공략했다. 단독 매장만 고집하지 않고 대형마트와 백화점 안으로도 들어갔다. 경기 불황 속에서 소비자는 빠른 반응을 보였다. 설립 첫해 5개에 불과했던 매장이 2004년 228개, 2005년 410개, 지난해 520개로 크게 늘었다. 해외 18개국에도 진출했다.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출신의 송기룡(60) 사장을 영입했다. 산업의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영 방식을 도입해 혁신을 꾀하기 위해서다. 송 사장은 1990년대 7년간 삼성전자 미주법인장을 맡는 등 삼성에서 30년간 글로벌 경영 전략 관련 일을 했다. ‘전자맨’에서 ‘화장품맨’으로 변신한 데 대해 송 사장은 “전자·자동차·철강 부문에는 한국 국적의 글로벌 기업이 있는데 화장품에는 아직 없다.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를 키우는 데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더페이스샵은 2005년 말 외국 투자를 유치했다. 홍콩계 투자회사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정 회장의 지분 70%를 샀다. 최대 주주가 외국계 펀드이다 보니 화장품 업계에서는 더페이스샵의 인수합병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740개 매장을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보하고 있는 더페이스샵의 강점을 넘보는 국내외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더페이스샵 측은 “최대 주주가 정 회장과 송 사장에게 경영권을 일임했고, 안정적 투자를 통해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더페이스샵은 내년을 ‘글로벌 시장 개척 원년의 해’로 정했다.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는 230조원. 그중 한국 시장은 3%인 7조원에 불과하다. 송 사장은 “시장의 97%가 해외에 있으니 해외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국내 화장품 시장의 경쟁 격화 때문이기도 하다. 더페이스샵은 후발 중저가 업체들과 브랜드숍 운영에 뛰어든 대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했다. 송 사장은 “국내에서는 브랜드숍의 리더로서 현상 유지를 하면서 해외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해외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나라별 맞춤 전략을 짜고 있다.

 “해외 진출 초기에는 현지의 문화적·기후적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국식 상품·마케팅·영업 기법을 그대로 적용하려 했었어요. 우산을 선물하지 않는 관례가 있는 대만에서 우산을 사은품으로 주거나, 습기가 많은 동남아에서 한국에서 팔던 보습 제품을 그대로 팔기도 했죠.”

 송 사장은 해외 아웃소싱을 강화해 제품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쓰는 제품을 골고루 갖춰 국민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도 있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그는 요즘 회사의 조직 체제를 정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내부 조직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회사의 외형적 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인사제도를 연공서열에 의한 보상·승진에서 능력 기반으로 바꾸고, 직원의 교육 훈련도 강화하고 있다. 송 사장은 “내년은 새로운 브랜드 전략 수립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글=박현영 기자,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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