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生肝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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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간(肝)도 빼줄 것처럼」이란 표현이 있다.무엇이든 다 줄 듯이 상대방을 떠받드는 행위를 일컫는다.이 표현에 간이 등장하는 까닭은 그만큼 인체에 있어서 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간이 중요한 것은 사람 뿐만 아니라 다 른 동물들도마찬가지다.우리 전통 설화인『토끼전』(혹은 『별주부전』)의 소재가『삼국사기(三國史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얼마나 오래 전부터 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엿볼 수있다. 이 설화에서 별주부에 유인 돼 남해용왕(南海龍王)앞에 끌려간 토끼는 이렇게 둘러댄다.『그처럼 소중한 간을 어찌 가지고 다니겠습니까.저는 늘 제 간을 꺼내 맑은 물에 씻은 다음 산속 깊은 곳에 감춰두고 다닌답니다.』 그러나 동물마다 간의 구조.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설혹 다른 동물의 간을 이식했다 하더라도 똑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인간은 더 말할 것도 없다.현대 의술(醫術)은 동물의 간을 인간에게 이식하는 시도를 되풀이 해오고 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92년 미국 피츠버그.로스앤젤레스에서 원숭이 간과 돼지간을 인체에 이식하는 수술을 감행했지만 결국 이식받은 환자들은며칠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몇년전부터 전세계에서 활발히 시도되는 것이 뇌사자(腦死者)의간 이식이다.우리나라에서도 91년부터 네차례나 시도돼 성공을 거두었다.아직 생명이 끊어지지 않은 사람의 간을 떼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없지 않지만 죽어가는 또다른 생명을 살려낸다는 의미도 크다.
건강한 사람의 간을 일부 떼어내 중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89년 호주(濠洲)에서였다.일본인 어머니가담즙관이 없어 사경(死境)을 헤매는 한살 짜리 아들을 살린 것이다. 그로부터 5년만에 우리나라에서도 건강한 아버지의 간 4분의1을 떼어내 생후 9개월된 선천성 담도폐색증 딸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흐뭇한 소식이다.최초의 사례가 모자(母子)였고우리나라의 경우가 부녀(父女)라는 점만 다르다.
親혈육간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혈육간이라 해도 간을 떼어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그만큼 우리의사회가 각박해지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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