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문화도 자본 뒷받침돼야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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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는 대개 소수의 호사가나 엘리트층에게 향수되는 문화를 순수 혹은 고급문화,그와는 대척적 위상을 지니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문화를 대중문화란 말로 불러왔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산업화가 고도로 진전되고 대량생산.대량소비가 일상화하면서 상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파워와 영향력은 엄청나게 증대됐다.
그 때문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오히려 대중문화가 고급문화를 압도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본격적으로 문화를 산업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까지 떠밀려와 있다.한때는 각각 고매한 형이상학과 물질적 천박함이나 연상시키던 문화와 산업의 모순적 결합이하나도 낯설거나 이상스럽게 보이지않는 세상이 됐다.
소위 문화산업이 미래사회의 주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유효하다.바꿔 말해 문화는 대중을 겨냥한 상품경제의 회오리장(場)그 한가운데 설수 밖에 없게된 것이다.
90년대 초두부터 불기 시작한 문화 상품화의 바람은 올해들어더욱 가속화하는 경향을 보였다.광범한 대중의 수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의 상품화바람은「대중문화의 확산」과 같은 어의(語義)를 갖는다.
문화적 생산물을 상품이란 딱지를 붙여 팔아넘기기 위해선 소비자들을 끌어들일수 있는 대중성의 확보가 필수적이다.어찌보면 올해는 그런 대중영합의 문화가 순수예술성을 고집하는 고급문화에 현저하게 비교우위를 보여준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의 여부는 제쳐놓고 우리나라가 적어도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선진국형의 진로를 따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 문화산업이 한심할만큼 국내수요의 울타리 속에갇혀 있다는 것이다.국제화니 세계화니 하는 구호가 다소 수선스럽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풍미하고 있지만 역시 문화상품의 판매에 활로를 제공해줄 곳은 세계시장 뿐이다.
그러려면 세계인의 정서에 호소할수 있도록 내용.주제같은 알맹이가 보편성을 갖춰야 하며 또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홍보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목을 늘여 기다리는 노벨문학상만 해도 어째서 이웃 일본에선 둘씩이나 수상자를 낼수 있었는지 한번쯤 심각하게 음미해볼 일이다.
올들어 정부에서도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외진출문제를 놓고 그 전략수립에 골몰해 있다는 말도 들린다.그러나 무엇보다 문화산업의 세계화전략을 막고 있는 주범은 구멍가게 수준을 강요하는 자본의 영세성이다.
두둑한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문화산업의 생산주체들이 예술성과 상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로선 돈 있는 기업들의 강력한 스폰서십밖에는 달리 그 대안이 없다.다행히 금년 봄 기업메세나협의회란게 창립돼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진 않으나 세계화를 겨냥한 문화산업 진흥을 위해 기업메세나의 저변과 규모는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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