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누구인가] 진료비까지 동결하며 성장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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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949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비단 거래상의 아들로 태어난 탁신은 어릴 적 꿈인 경찰이 되기 위해 태국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73년 경찰대학 졸업과 함께 국가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스턴 켄터키대학과 샘 휴스턴 스테이트대학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탁신은 귀국 후 9년간 방콕에서 경찰로 재직했다.

뉴스위크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탁신은 82년 경찰로서 확보한 인맥을 활용해 정부에 컴퓨터를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탁신의 가족기업인 신 코퍼레이션은 전기통신 사업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해 태국 최대의 회사로 성장했다. 탁신은 20억달러의 부를 축적해 태국 최대의 자산가로 떠올랐다. 태국 TV방송도 탁신과 그 친척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업가에서 다시 정부관료로 변신한 탁신은 94~97년 외무장관과 부총리직을 역임했고, 98년에는 민족주의 색채가 농후한 '타이 락 타이(TRT:태국인은 태국인을 사랑한다는 뜻)' 신당을 창당했다.

그는 2001년 1월 총선에서 의석의 70%를 얻는 압도적 승리를 거둬 총리에 취임했다. 외환위기로 외국인에 대한 시각이 차가워진 태국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은 게 주효했다.

총리 취임 이후 탁신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에서 갖가지 아이디어를 얻어 국가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병원진료비를 동결하고 일시적으로 연료 가격을 통제했다. 시장을 이해하는 최고경영자(CEO) 출신 총리가 강력한 반(反)시장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탁시노믹스로 알려진 그의 경제정책도 공공지출을 늘리고 기업과 개인의 대출을 확대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덕분에 소비는 늘어났지만 경제가 하강할 경우 가계와 기업은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뉴스위크는 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탁신 총리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탁신을 '포퓰리스트(대중 인기영합주의자)'라고 표현했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민주주의는 도구에 불과하다. 궁극적 목표는 국민에게 풍요로운 생활.행복, 그리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태국 제헌절에 탁신이 한 말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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