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싸움 水利權 갈등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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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물꼬 싸움엔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양보없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 공공재(公共財)였는가를 가르쳐주는 말이다.
「물 쓰듯 한다.」 많다 하여 귀한 줄 모르고 마구 쓴다는 뜻이다. 이런 말들을 되새기기나 하듯 지금 물(水)싸움이 전국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강 줄기를 둘러싸고 서로 「내 물」이라며 맞서고 있다.
그간 우리는 물의 총량에 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 올 여름처럼 가뭄이 심했던 경우를 빼곤 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않았고 지역간의 물인심도 좋았다.
그러나 갈수록 수자원이 부족해지고 깨끗한 물에 대한 「갈증」도 절실해지면서 이제 수리권(水利權)문제가 지역 주민간의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물 싸움은 아직까진 국지전(局地戰)정도에 머물러 있다.그러나내년부터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전국 곳곳으로 번져나갈 것이 확실하다. 건설부도 이같은 상황을 예상해 내년중 하천법을 바꿔 수리권 분쟁을 확실하게 조정하는 방안등을 담을 계획이다.건설부관계자는『강 줄기가 자기 고장을 지나간다고 자기네만을 위한 물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버리고 국민들이 함께 나눠 써야 하는 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 싸움이 한창인 곳을 찾아가 본다.
◇평창강 취수장 건립 시비=충북 제천시는 부근 충주댐의 오염이 심해지자 평창강의 맑은 물을 끌어다 수돗물을 공급하기로 하고 92년 건설부로부터 상수도 사업 인가를 받았다.평창강 줄기가운데 행정 구역상 제천군에 들어가 있는 곳에 취수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평창강 하류인 강원도 영월군에서 들고 일어났다.
제천시에서 평창강 물을 상수원으로 쓰면 갈수(渴水)기에 하류지역의 수량이 줄어들어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며 이의를 제기해 제천시는 사업 추진을 중단한 상태다.
영월군은 강원대에,제천군은 충북대에 각각 수자원 조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왔다.강원대는「물이 부족해진다」고,충북대는「물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보고서를각각 낸 것이다.
이에 따라 환경처 주재로 지난 5월 영월군.제천시.제천군은 물론 강원도.충북도 관계자들까지 함께 모여 회의를 가졌다.오랜토론끝에 제3의 기관에 용역을 주어 그 결정에 따르자는 결론을냈다. 이에 따라 결국 대한토목학회가 조사에 나서「10년마다 한번 닥칠 큰 가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영월군민들은 여전히 환경보전을 위해서는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한다며 이 결과에도 불복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취수장 건설을 끝내 주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던 제천시의 계획은 차질을 빚어 여전히 벽에 부딪쳐 있다.
◇길안보(洑)조성공사 시비=건설부는 포항.영일 지역의 물부족이 심각해지자 이들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안동군의 임하댐과 영천댐을 잇는 도수로 공사에 착수하면서 안동군 길안천(川)에 보를 조성하려고 했다.
그러자 일부 안동군 주민들은『우리 지역에는 이미 안동댐.임하댐이 있는데 다시 보를 만들어 물을 끌어 가려고 하느냐』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부는 수자원 공사와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 길안보 사업 시행여부를 다시 결정 키로 했다.
〈朴義俊기자〉 길안보 조성 사업이 백지화되면 임하댐과 길안보에서 하루 평균 40만2천t의 물을 끌어 오려던 계획은 수정이불가피하다.
◇천연 관정 공사 시비=역시 포항.영일 지방의 만성적인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경주군 지역에 천연 관정 50개를 뚫어 이곳에서 나오는 물 가운데 상당수를 인근 안계댐으로 끌어 오려고 했다.
그러자 경주 군민들은 과수원이 많은 경주군에서 물을 많이 뽑아 가면 농사에 차질을 빚는다면서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이미 뚫어 놓은 암반관정에서만 물을 끌어다 쓰게 하면서 더 이상 작업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탐진댐 건설 시비=이 경우는「우리 물을 빼앗길 수 없다」는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정부가 추진중인 전남 장흥군 탐진댐은 대표적인 물 부족 지역인 전남 장흥.강진.해남.완도.영암군등에 연간 8천9백만t의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88년에 타당성 조사를 이미 마친 정부는 내년에 실시설계에 들어가고 예산이 확보되면 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예정인데 지역 주민들의 이해 관계가 엇갈려 상당한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수몰 지역인 장흥군 의회는 지난 5월19일 건설부장관 앞으로공문을 보내「다른 시.군을 위해 우리 군민이 희생의 제물이 돼야 하느냐」며 탐진댐 건설을 반대한다는 결의문을 보냈다.
반면 하류에서 해마다 물이 모자라 고통을 겪는 강진군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천법=현행 하천법도 하천을 관리하는 건설부장관이나 도지사.시장등이 이같은 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그러나 이들의 중재.조정이 있어도 주민들이 따르려 하지 않아 문제다. 더구나 하나의 하천을 두 군데 이상의 기관에서 관리할 경우에는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차 없다.
특히 제천시와 영월군의 물 싸움과 같이 당장 마시고 공장에서써야 할 물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물 가운데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둘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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