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무 살리려 대사관 설계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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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테드 립만 주한 캐나다 대사가 대사관 앞에 있는 회화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 제공]

지난달 9일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후 처음으로 직접 지은 단독 공관의 개관식을 서울 정동 새 대사관 공관에서 열었다. 이날 몰려든 100여 명의 축하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대사관 정문 앞에 버티고 선 거대한 회화나무였다. 수령 520년이나 되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다. 테드 립만(54) 캐나다 대사는 “이 건물은 캐나다 전통 건축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나무를 끌어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 대사관 측이 서울시 지정 보호수가 있는 땅을 공관 부지로 매입했을 때 언론과 지역 주민들은 혹여 나무가 죽을 까 많은 걱정을 했다”며 “대사관 측은 이런 걱정을 감안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이 나무는 공관 착공 당시 푸른 잎이 나지 않고 뿌리도 성장을 멈춘 고사 직전 상태였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길은 험했다. 예상보다 뿌리가 커 설계도를 수정해 1층 로비가 나무를 비켜가도록 조치했다. 서울대 이경준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나무의 손상 정도에 대한 정밀 진단도 했다. 죽은 나무 껍질을 다듬어 내는 외과 수술도 여러차례 했다. 공사 중엔 나무에 지나친 진동을 주지 않으려고 중장비는 아예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배려했다. 지지대를 새로 세웠고, 물이 잘 빠지게 배수구도 새로 만들었다.

립만 대사는 취임 전인 2003년 대사관 신축 공사가 시작됐을 때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나무를 되살리는 과정을 조언하면서 지켜봤다. 중국 전문가로 캐나다 외무성 북아시아국 국장과 브리티시콜롬비아대(UBC)의 아시아연구소 연구 외교관 자격으로 한국을 수시로 드나 들었다. 회화나무는 립만 대사가 정식 취임한 올 7월 새로 돋은 푸른 잎으로 장식하고 그를 맞았다. 뿌리도 수십 년 만에 다시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이같은 공로로 17일 환경재단이 주는 제2회 대한민국 녹색대상 특별 공로상을 수상했다. 외국기관이 이 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립만 대사는 상금 100만원으로 이날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 세미나를 개최했다. 환경재단 최열 대표는 “캐나다 대사관이 새 건물을 짓는 와중에 회화나무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온 점을 높이 사 특별 공로상을 주게 됐다”고 말했다.

 립만 대사는 “되살아난 회화 나무가 한-캐나다 두 나라 간 순탄한 앞날을 상징하는 듯 하다”며 “지구 온난화 대책 교류는 물론이고 인적 교류, 자유무역협정(FTA)체결 등 임기 안에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회화나무=장미목 콩과의 낙엽교목.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성하고 큰 인물이 난다 해서 선조들은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꼽아 대궐, 서원, 사찰에 많이 심었다. 자유분방하게 잘 자라고 오래도록 크는 나무다. 서울 정동의 회화나무는 키가 17m, 둘레가 5.16m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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