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30> 심판보다 똑똑한 축구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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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해 6월 19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렸던 2006 독일월드컵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

한국이 0-1로 끌려 가던 전반 30분, 파트리크 비에라의 헤딩슛을 골키퍼 이운재가 가까스로 쳐냈다. 순간 육안으로는 공이 골라인을 넘어선 것 같았다. ‘아이쿠, 골이구나’ 싶었는데 심판은 골 신호를 내지 않았다.

 잠시 후 그 장면이 기자석의 TV 모니터로 재생됐다. 화면상으로는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 있었다. 한국 기자끼리 “저거 골로 인정됐으면 게임 끝났어”라고 수군거렸다. 유럽에서는 “심판의 오심으로 프랑스가 손해를 봤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한국에서는 3차원 입체 그래픽까지 동원해 ‘공이 골라인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노골이다’고 주장한 네티즌이 있었다.

 앞으로 이런 논란과 얘깃거리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만 남게 될 것 같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골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알려 주는 일명 ‘스마트 볼’(사진)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13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FIFA 클럽월드컵 4강전(AC 밀란-우라와 레즈)에 사용된 이 공 안에는 마이크로 칩이 있다. 공이 골라인을 넘어서면 이 칩이 주심에게 즉각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골이냐 아니냐를 놓고 멱살을 잡을 일도, 억울해할 일도 없게 됐다는 거다.

 그런데 정말 스마트 볼이 오심 시비로부터 선수와 팬을 구원해 줄까. 걱정스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경기당 수백 번의 발길질을 당하고도 고장이나 오작동이 전혀 없어야 한다. FIFA도 이게 가장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지난해 월드컵부터 심판끼리 의사 소통 수단으로 도입한 헤드세트도 비 오는 날이면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있다.

 둘째, 특정 업체의 독과점을 심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스마트 볼을 개발한 아디다스는 70년 멕시코월드컵부터 지금까지 월드컵 공인구를 생산·공급하고 있다. FIFA는 나이키나 푸마 등 다른 다국적 스포츠 브랜드에는 월드컵에 발을 디딜 틈조차 주지 않았다. 스마트 볼의 등장을 계기로 FIFA와 아디다스의 ‘특수 관계’가 더 깊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보다 더 본질적은 것은 스마트 볼이 ‘축구의 즐거움’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결승에서 독일 골대를 맞고 수직 낙하한 잉글랜드 팻 허스트의 골은 4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축구팬들의 안줏거리가 되고 있다.

 수천 년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놀이 도구로 몸바쳐 온 축구공이 어느 날 인간을 향해 “야, 너희들 조용히 해. 골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라고 말할 때 기분은 어떨까.

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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