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에너지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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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인가. 최근 아프리카.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대규모 기아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쌀.밀.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가 일제히 상승=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안정세를 보였던 쌀값이 요즘 20년 만의 최고치(1988년 13.40 달러)에 근접했다. 지난 14일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쌀 선물가격은 100파운드에 13.125 달러에 마감됐다. 일년 전 9.87달러에서 33% 오른 수치다.

갑자기 가격이 치솟은 밀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초 미니애폴리스에서 부셸(27.2㎏)당 7달러 안팎에 거래되던 밀 선물가격은 3개월여 만인 12월 초 10달러 선을 돌파했다. 국제 밀값은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 말보다 80% 넘게 올랐다. 바이오 에너지의 원료로 각광받는 옥수수는 더 뛰었다. 2005년 말 부셸당 2달러 하던 게 지난 14일 시카고에서 4.20달러가 됐다.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에 두 배 넘게 오른 것이다.

◆곡물가 급등 배경=이처럼 곡물가격이 상승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쌀은 생산이 소비를 못 쫓아갔다. 2000년 이후 전 세계적인 쌀 소비는 7.5% 늘어난 반면 생산은 5.4% 증가에 그쳤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소비량은 많아진 반면 국제 수출량은 이를 못 따라간 것이다.

특히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인 태국은 국내 수요가 늘자 수출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4위 수출국인 미국은 바이오 에너지 붐으로 쌀 생산이 줄었다.

다른 곡물 재배지를 에탄올 연료인 옥수수 밭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 틈에 쌀 경작지도 3%나 줄었다. 밀도 바이오 에너지 때문에 타격 받은 경우다. 올 기후도 나빠 풍성한 밀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신음하는 후진국=아프리카의 빈국은 식량 공급을 유엔과 시민단체의 인도주의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유엔은 회원국으로부터 일정액을 모아 그 돈만큼 식량을 구입하고, 이를 지원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면 유엔이 구입해 지원할 수 있는 규모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잔 지글러 유엔 식량 특별보고관은 10월 말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농지를 바이오 연료 생산에 전용하는 것은 반인도주의적인 자세"라며 "향후 5년간 바이오 연료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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