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경의선 개통 다음날부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1~13일 기관차에 매달린 10량의 컨테이너가 텅 빈 채 달리고 있는 것이다. 14일에도 열차에 실을 화물 수요는 없다고 한다. 운행 첫날 북측 판문역에 도로경계석을 내려놓은 다음, 개성공단에서 만든 신발 등을 싣고 온 게 운송량의 전부다. 정부 당국은 "어렵사리 남북이 합의한 사항인데 처음부터 결행할 수는 없다"며 "빈 차로라도 운행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일시적 현상이란 해명에도 일리는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이 이미 트럭 운송 계약을 해 둔 상태여서 당장은 열차운송 물량이 없다"며 "다음주부터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낙관만 하기는 힘들다. 올 들어 11월 말까지 10만7891t의 건설자재.원자재가 남에서 개성공단으로 올라갔지만 거기서 상품으로 만들어져 내려온 물량은 10분의 1인 1만7337t에 불과하다. 그래서 화주(貨主)들이 열차편으로 관심을 돌려도 막상 싣고 내려올 짐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가 가시적 성과를 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화물 수요 예측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남북 총리회담에서 경의선 개통 날짜를 12월 11일로 발표할 때부터 대통령 선거일(19일)을 염두에 둔 택일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취임 1주년과 겹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믿고 싶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7일 남측인사 200여 명이 금강산에 올라가 치른 이산가족면회소 남북사무소 준공식이다. 이날 완공된 것은 남북 실무진이 입주할 사무실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핵심 시설인 면회소 자체는 내년 상반기에 준공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역시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이벤트성 행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10.4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교류.협력사업이 활발해지고 각종 회담에서 많은 합의사항이 나오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성과를 과시하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쏟는 게 어떨까. 경의선 운행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7년간 공을 들인 사업이다. '화물' 없는 '화물열차' 운행으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비판을 듣는 현실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