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1t 기름에 10년 골병드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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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원유 유출사고가 난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원봉사자들이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태안=뉴시스]

이번에 벌어진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는 원유가 바다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해양 오염은 물론 선박 외에 해양 시설이나 어업 활동에서 비롯된다. 유해물질, 폐기물, 폐그물, 폐어구, 양식 부산물 등이 모두 오염원이다. 그러나 이들로 인한 오염은 대형 유조선 사고로 인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원유야말로 해양 오염의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태안 인근의 유조선 사고로 흘러나온 원유량은 대략 1만t. 반면 지구상의 바닷물 전체의 무게는 무려 140경t에 달한다. 사고가 벌어진 서해 일대의 해수만 하더라도 거대한 수조에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바다로 흘러나온 원유로 인한 악영향은 10여년 이상 지속된다. 왜일까?

무엇보다 원유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원유는 해류나 조석, 바람에 따라 널리 퍼진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성분은 용해되기도 하고, 일부는 증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용해되지도, 증발되지도 않는 성분도 많다. 바닷물과 합쳐진 이 성분은 에멀션 (emulsionㆍ유탁액)이라는 기름 찌꺼기 형태로 오랫동안 떠돌아다니게 된다. 박테리아나 균류가 이 성분을 분해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이 성분 가운데 독성을 띤 방향족 탄화수소는 분해조차 되지 않는다. 이 물질은 해수나 퇴적물에 잔류해 해양 생물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바닷물 자체의 순환 원리도 기름 오염 사고의 심각성을 증대시킨다. 바다는 넓지만, 표면의 해수는 비교적 안정돼 있다. 바다 속 심층수와 잘 섞이지 않는다. 태양은 바다 표면만을 따뜻하게 비추는 반면 따뜻한 물은 바다 표면에 주로 머물기 때문이다. 해양 과학자들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전체의 바닷물이 뒤섞이려면 무려 1600년이나 걸린다. 따라서 오염된 바닷물이 바다 위 아래의 깨끗한 물에 완전히 섞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요인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인들은 해상 오염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다.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는 워낙 광활하기 때문에 모든 오염 물질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자정능력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유조선으로 인한 해상 오염의 가능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년전의 일이다. 195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석유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할 무렵이다. 또 중동 지역에서의 잇단 원유 발굴로 유조선을 이용한 원유 운반이 급증할 때였다. 1954년 정부간 해사협의기구(IMCO)는 ‘기름에 의한 해수오탁방지를 위한 국제조약’을 제정했다. 얼마 후 기름으로 인한 바닷물의 오염 가능성은 현실화됐다. 1967년 3월 영국의 유조선 토레이케년 호가 쿠웨이트에서 기름을 싣고 영국으로 향하던 중 영국 남서쪽에서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순식간에 8만여t의 기름이 흘러나와 영국과 프랑스 해안선 상당 부분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 후에도 굵직굵직한 원유 해상 오염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1978년 프랑스 해안에서 벌어진 아모코카디즈 호의 사고, 1989년 알래스카에서 생긴 엑손 발데스 호 사고 등이 좋은 예다. 한 때 인간이 망가뜨릴 수 없는 영역으로 간주됐던 드넓은 바다조차도 결코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속속 확인된 것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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