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LG전자 직원들에게 글로벌 예절 가르치는 포포바 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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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경부고속도로의 경기도 오산IC를 빠져 나와 LG전자 평택공장에 들어서면 ‘러닝(Learning)센터’라는 자체 교육 시설이 있다. 11일 찾은 이곳에는 젊은 외국인 여성이 이 회사 직원 50여 명 앞에서 영어로 유창하게 강의하고 있었다. LG전자에서 ‘문화 코디네이터’로 부르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리디아 포포바(27·사진) 대리다.

“유럽의 한 현지법인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한국인 관리자가, 자기 일 다 하고 퇴근하는 현지 채용인에게 ‘동료 일 좀 도와주고 함께 퇴근하라’고 했다가 반발을 산 적이 있어요.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조퇴를 신청한 직원에게 ‘바쁘니 주말에 가라’고 했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뻔한 경우도 있습니다.”

리디아는 해외 근무를 앞둔 수강생들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예시하며 대응 방법을 설명했다. 대개 사고방식이 다른 현지인들에게 한국식으로 대하다가 낭패를 겪은 사례다. 사원이 중간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법인장에게 직접 업무 의견을 냈다가 ‘계통을 밟으라’고 제지받았던 남미 법인의 사례도 거론됐다.

포포바는 한국말도 잘했다. 강의가 끝난 뒤 “업무 지시를 명확하게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인 관리직이 적어 업무시간에 쫓기는 데다 영어나 현지어가 서툴러 한국에서 하듯이 ‘이거 한번 해 보지’ 하는 식으로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기 방식대로 일 처리를 하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질책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리디아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중국 등 아시아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화 갈등”이라고 말했다.

LG전자가 문화적 충격에 관한 강좌를 마련한 것은 중국·폴란드·멕시코 등지에 현지 공장이 늘면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해외로 나가는 임직원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직원을 상대로 이런 교육을 하고 있다. 생산 근로자를 포함해 글로벌 임직원 8만2000명 가운데 60%가 넘는 5만2000명이 외국인이라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리디아는 “외국인 직원도 한국에 와서 이곳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며 “대표적인 것이 스킨십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아무렇지도 않게 동성 간 신체 접촉을 하는 데 민감하다. 회사 식당에 줄 섰는데 친하게 지낸다고 뒤에서 껴안거나 자리에 앉아 야근하는 부하 직원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을 보고 놀란다는 것이다.

2000년 우즈베키스탄 동방대를 졸업한 그는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교환학생으로 방한 경험이 있는 데다 모국에 20만 명의 고려인이 있어 한국이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부터 LG전자에서 일해 왔다. 처음엔 현지 채용인 교육을 담당하다가 지난해부터 ‘문화 코디네이터’ 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사내 커플인 한국인 남편과 경기도 죽전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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