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막오른 주총, 소액주주·외국인 목소리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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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S사는 3월말까지 주주총회를 열어야하지만 아직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지분이 10%선에서 30%선으로 크게 오른 뒤, 외국인 주주들이 배당률을 높여달라고 은근히 압력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배당률 등 주총 안건을 확정하지 못해 주총 일자도 잡지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결산 법인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올렸다. 지난 13일 넥센타이어를 시발로 3월말까지 증권거래소 5백76개, 코스닥시장 8백36개 등 총 1천4백12개 기업이 주총을 열게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날짜를 잡은 기업은 2백2개(14.3%)에 불과하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주총장의 열기가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내주식을 대거 사들여 상장사 지분의 40%이상을 확보한 외국인들의 목소리가 드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소액주주들 역시 인터넷을 활용해 결집력을 높이는 등 주주권리 행사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K(주)와 현대엘리베이터 등은 경영권을 놓고 한판 격돌이 불가피하며, 삼성과 LG 계열사들은 그룹의 골칫덩어리가 된 삼성카드와 LG카드에 대한 지원문제로 시끄러울 전망이다.

코스닥시장에선 개인투자자들이 경영권 인수를 선언하고 지분을 매집 중인 아세아조인트 등의 주총이 관심사다. 이른바 '수퍼 개미'들의 경영권 탈취가 과연 성공할지 주목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총의 변화는 ▶경영진의 전횡을 막아 주주중시 경영을 정착시키는 한편 ▶경영권 가치에 따라 주가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행동하는 소액주주=SK의 기존 대주주와 소버린자산운용은 현재 소액주주 '구애'에 열을 올리고 있다. SK측은 공개추천 방식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모집했고, 소버린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소액주주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캐스팅 보트'를 쥔 소액주주들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SK 노조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노조 측은 주총 때 표대결에 참여하기로 하고 우리사주(3.8%)와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권한을 위임받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소액주주들이 시민단체에 권한을 위임한 경우도 있다. 참여연대가 벌인 최태원.손길승 회장의 SK텔레콤 이사직 자진사퇴 권고 주주제안에 소액주주 등 51명(2.1%)이 참여한 것.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소액주주의 움직임이 변수다. 현대그룹과 금강고려화학(KCC)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분 경쟁에 돌입한 상태여서 10%로 추정되는 소액주주들이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이미 현대엘리베이터 소액주주 모임 중 한곳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의 편을 들기로 하고,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목소리=현재 외국인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등록 기업은 1백34개사로 2002년 말(79개사)보다 69.6%나 늘었다. 외국인들의 의사에 따라 이사진 교체 등 경영권이 흔들릴 곳이 있는가 하면, 배당금 같은 주요 사항이 뒤바뀔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투명성이 개선되고 배당률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외국인들이 많은 지분을 가진 기업의 경우 배당 결정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코스닥기업들의 배당률도 높아지고 있다. 코스닥시장에 따르면 2001년 2.9%에 불과했던 시가배당률(주당 배당금/주가)이 2003년 결산의 경우 3.9%로 올랐다.

기관투자가 역시 의결권 행사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한국투신운용은 최근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기업 중 15곳을 뽑아 질의서를 보냈다. 배당 의사와 경영 투명성 노력, 설비투자 계획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주총에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이슈들=집중투표제는 올해 주총의 중요한 결과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기업인 포스코가 이미 집중투표제 도입을 약속했다. 집중투표제가 시행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사로 선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전자주총을 채택하는 기업이 탄생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주주들이 주주총회 장소에 나오지 않고 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자투표를 하는 방식이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전자주총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있다"면서 "벤처기업 중 기술력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전자주총을 도입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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