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주의 부른 부시 행정부의 4대 실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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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 26면

변선구 기자

나는 ‘역사의 종언’에 대한 글을 20여 년 전 발표했다. 그때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대외 행동상의 실수와 오판으로 말미암아 반미주의가 세계 정치의 주요 변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이면에는 9·11 테러 공격 이후 부시 행정부가 범한 4대 실수가 자리 잡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

첫째, 9·11 테러 공격 이후 대응책으로 마련된 ‘선제공격 독트린(the doctrine of preemption)’은 대상 범위가 부적절하게 확장됐다. 테러 조직에 더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할 우려가 있는 이라크와 소위 ‘불량국가들’까지 선제공격 가능한 목표물이 된 것이다. 물론 대량살상무기를 휘두를지 모르는 비(非)국가 테러단체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겠다며 세계 곳곳에서 선제공격 독트린에 입각해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핵심적인 핵 비확산 정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정책을 수행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이라크 전쟁에는 수천억 달러가 들어갔고 수만 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도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이스라엘의 성공적 공습을 부러워하면서도 북한과 이란에 대해선 군사적 충돌을 회피해 왔다. 게다가 이제는 81년 이스라엘이 구사한 ‘제한적’ 개입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핵 개발을 추진하는 국가들이 오시라크 원자로의 운명을 교훈 삼아 핵 개발 프로그램을 복수의 장소에서 동시 진행하거나 은폐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 중요한 계산 착오는 미국의 패권 행사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잘못 가늠한 데 있다. 부시 행정부의 많은 인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의가 없어도 미국이 무력행사에 성공하면 정당성을 추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90년대 발칸반도의 경우나 냉전 기간에는 미국이 그렇게 행동해도 됐다. 국제사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리더십’이었지 ‘일방주의’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할 무렵에는 국제환경이 바뀌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견주었을 때 미국의 힘은 너무나 막강했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무력을 행사하자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마저 격분했다. 국제사회에서 불균형한 힘의 분배는 구조적인 반미주의를 낳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반대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라크전이 발발할 때까지 여러 국제 제도에 대해 ‘면전에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반미감정은 격화됐다.

미국의 세 번째 실수는 약소국이나 다국적 네트워크를 구비한 조직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의 효용성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다.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2400만에 불과한 이라크에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숙고해볼 만하다. 한 가지 문제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복잡다기한 사회세력들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세력들은 중앙집권화된 위계질서가 없다.

따라서 이들을 재래식 군사력으로 저지하거나, 강제하거나, 조작하여 지배할 수 없다.

이스라엘도 지난여름 레바논 전쟁에서 비슷한 판단착오를 했다.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무장 조직인 헤즈볼라를 궤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국제무대의 주역이 민족국가였던 20세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해할 만하다. 이 두 나라가 확보한 재래식 군사력은 20세기 국제체제에 가장 적합했던 것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양국은 그들을 위협하는 도전의 성격을 잘못 해석했다. 알카에다의 배후에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있고, 헤즈볼라의 뒤를 봐주는 것은 이란과 시리아라고 믿었다. 헤즈볼라의 경우 국제적인 연계는 없다. 다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활동하는 이 조직들은 그 나름대로 사회적 뿌리가 있으며 지역 국가들이 졸(卒)처럼 사용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재래식 군사력의 사용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부시 행정부의 무력행사에는 납득할 만한 전략이나 독트린뿐만 아니라 실천력도 결여됐다. 이라크의 경우만 봐도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잘못 판단했고, 점령 계획을 적절하게 마련하지 못했으며, 일이 잘못됐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지도 못했다. 지금도 부시 행정부는 민주주의 증진과 같은 핵심적 과제를 이라크에서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실행상의 무능력에는 부정적인 전략적 여파가 따른다. 이라크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던 사람들, 개입 후에는 사태를 망쳐버린 사람들이 이제는 이란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라크보다 더 크고 결연한 이란을 미국이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세계가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본질적 문제는 국제체제에서 힘의 분배가 불균형적이라는 것이다. 민주국가라고 해도 미국과 같은 입장에 있는 나라는 패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점점 더 자제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헌법의 제정자들은 억제되지 않은 권력은 설사 민주주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경우에도 위험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정부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3권 분립에 따라 헌법을 제정했다.

오늘날 국제체제에는 균형과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이 곤경에 빠지게 된 배경이다. 보다 ‘매끄러운’ 힘의 분배가 국제체제에서 이루어진다면 힘의 행사가 더 조심스러워질 것이며 자제력을 스스로 버리려는 유혹이 줄 것이다. 국제체제가 국내체제와 달리 온전히 민주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이다. 저서로는『역사의 종말』(1992),『트러스트』(95),『대붕괴 신질서』(99),『기로에 선 미국』(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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