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ment in stocks] “오너들의 재테크에 동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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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대기업 오너라면 챙겨야 할 일가친척이 한둘이 아닐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 많은 식구에게 무작정 돈을 퍼줄 수는 없는 노릇. 대신 주식을 나눠주면 우호지분도 늘리고, 운만 따라준다면 한 몫 챙겨줄 기회까지 생기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가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재벌2세에 관해 궁금증이 떠오를 때가 있다. ‘기업을 물려받은 ‘황태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사업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돈이 어디서 나는 걸까?’ 게다가 재벌가 형제들이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놓고 싸운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이들도 화수분처럼 무한정 돈이 솟아나는 구멍은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린 것은 대기업 오너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몇몇 사건을 통해서였다. 대기업이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동원하는 기발한 수단들이야 감히 개인 투자자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니 제쳐 두더라도 기업 오너들이 ‘딸린 식구들’을 위해 주식을 활용하는 방식은 개미들도 노력만 기울이면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딸린 식구’가 가장 많은 기업은 LG일 것이다. 좀 과장을 보태면 ‘기본이 4남5녀’라고 할 정도로 자손이 많은 기업이다.

‘딸린 식구’ 많은 재벌가 계열사 파악하기

이 많은 식구를 건사해야 하기 때문인지 LG는 상대적으로 주식과 관련된 사건이 많았다.

지난 2003년 이른바 ‘카드대란’으로 LG카드가 위기에 몰리기 직전, LG그룹 대주주 일가가 보유주식을 대거 팔아치워 문제가 됐던 적이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내용은 LG그룹 오너 일가가 회사가 위험해질 것을 미리 알고서 갖고 있던 LG카드 주식을 매각했느냐 여부였다.

하지만 이 내용을 보도하는 신문을 읽으면서 정작 신기했던 것은 ‘LG그룹 식구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하는 점이었다. 당시 신문 보도 내용에 따르면 LG카드 주식을 갖고 있던 LG그룹 오너 일가는 40명 정도였다. 익히 들어본 이름들도 꽤 있었지만 ‘사돈의 8촌’ 정도로 짐작될 뿐 누구인지 알 길이 없는 인물이 더 많았다.

정반대 성격의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02년 LG석유화학이 상장됐다. 그런데 LG그룹 일가는 LG석유화학이 상장되기 3년 전인 1999년 당시 대주주였던 LG화학으로부터 주당 5,500원가량에 주식을 대거 사들여 놓은 상태였다.

LG석유화학은 상장되기 무섭게 1만 원대로 올라섰고, 2003년 말에는 1만5,000원대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되자 이 역시 문제가 됐고, 시민단체 등에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을 지켜보면서 LG그룹과 대주주 일가,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관해 몇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LG그룹은 먹여 살려야 할 ‘딸린 식구’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

LG카드와 LG석유화학 사건으로 신문지면에 등장한 구씨와 허씨 일가, 그리고 아마도 사돈 집안쯤 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수만 50~60명은 됐다.

둘째, 이들 중 상당수는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나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별다른 ‘작업’ 없이 LG그룹 주식만으로 수십, 수백억 원을 너끈히 벌어들였다는 점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뻔했다. LG그룹 대주주 일가를 파악한 뒤 이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사들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베일에 싸인 대기업 오너 일가의 면면을 파악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통해 구OO, 허OO 등 LG그룹 일가를 찾아내 명단을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70명 정도까지 작성하다 제풀에 지쳐 중단해 버렸다.

미완성이나마 만들어진 LG그룹 오너 일가 리스트를 들고 이들이 사둔 주식을 찾아내기도 그리 쉽지 않았다. 지금은 특정회사의 대주주와 친인척 관계인 경우 회사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사들이면 공시를 내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5% 이상 대량으로 지분을 취득하지 않으면 주식을 사도 일반 투자자는 파악할 길이 없었다.

LG그룹 대주주 주식 재테크 실력 감탄사 나올 정도

때문에 결국 큰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작전을 바꿔야 했다. LG그룹 대주주 일가이면서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만 골라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회사들을 고르고 보니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열심히 뒤진 끝에 찾아낸 회사가 고작 LG전자, LG화학, 당시 새로 생겨난 지주회사 (주)LG와 LG생명과학 등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우량 회사들이기는 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나 허망했다. 먼 길을 돌아왔을 뿐 결론은 누구나 다 아는 회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주식을 살까?’ 망설이다 이제까지 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찾아낸 회사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러다 LG생명과학의 ‘출신성분’이 심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LG생명과학은 LG화학이 3개 회사로 분할되면서 생겨난 LGCI라는 회사가 다시 쪼개지면서 설립된 회사였다. LG화학은 지난 2001년 회사를 LG화학· LG생활건강·LGCI 등 3개사로 나눈 상태였다.

이들 중 ‘LG Chem Invest’의 약자인 LGCI는 이름부터 어딘가 수상쩍었다. 기업분할로 생겨난 회사를 1년여 만에 다시 쪼개는 데에는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간 LG그룹 대주주들이 회사를 쪼개고 나누며 보여준 주식 재테크 실력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경지가 아니었던가?

공시 자료를 다시 뒤적이며 LG생명과학의 대주주 명단을 파악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2년 말 기준으로 작성된 LG생명과학 사업보고서를 보니 이 회사에는 구씨 성을 쓰는 주주만 65명가량, 허씨와 김씨, 이씨 등을 쓰는 개인 대주주까지 더하면 이 회사 주식을 가진 오너 일가가 90여 명이나 됐다. 이들이 갖고 있던 주식은 대략 전체 지분의 40% 가까이 됐다.

기대를 걸고 주가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2003년 3월 초 LG생명과학 주가는 2002년 말 3만 원까지 올랐다가 2003년 3월에는 처음 상장되던 2002년 8월 수준인 1만5,000원 정도로 되돌아와 있었다.

공모주를 산다는 생각으로 LG생명과학 주식을 샀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 찾아낸 4개 회사 중 하나인 (주)LG 주식도 함께 샀다. (주)LG 역시 회사가 합쳐지고 나눠지며 복잡한 과정을 거친 회사였기 때문이다.

두 회사 중 LG생명과학은 예상이 적중한 반면, (주)LG는 전형적인 실패 사례였다.

우선 LG생명과학은 주식을 산 지 3개월 못 돼 주가가 5만 원을 뚫고 올라갔다. ‘더 들고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과도한 욕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몇 차례 경험해 봤기에 5만 원을 넘어서던 시점에 주식을 팔았다.

LG생명과학이 3배가 넘는 수익을 안겨주는 동안 (주)LG는 주가가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됐다. 2003년 3월 주당 5,000원 정도에 사들인 (주)LG는 해가 바뀔 때까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최악의 머피 법칙에 걸리다

당시 (주)LG에 관해서는 본의 아니게 장기투자자의 길로 들어섰고, 주가가 내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내버려두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돈을 빌려 투자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수익이 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평소와 달리 업무시간에도 몇 차례씩 (주)LG 주가를 들여다보다 결국 조바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다. 1년을 버텨온 주식을 6,000원도 못되는 가격에 팔았다.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았으니 됐다’며 위안을 삼았지만 (주)LG는 내가 팔고 나면 주가가 오르는 머피의 법칙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팔고 난 다음날부터 무섭게 오르기 시작한 (주)LG는 한 달도 못 돼 1만 원대를 가볍게 돌파하더니 2004년 말에는 2만 원대로 올라섰다.

이 정도에서 끝났다면 속이 덜 쓰렸겠지만 9만 원대를 넘어 10만 원을 바라보고 있는 (주)LG 주가를 보노라면 배가 아프다 못해 약이 오를 지경이다. 온갖 노력 끝에 20배 이상 올라갈 주식을 찾았고, 게다가 그 주식을 사놓고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팔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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