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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을 향한 최대의 경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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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 사이, 베카 고원에 사람의 눈을 의심케 하는 거대한 신전이 솟아 있다. 로마인은 왜 수도에서 수천㎞나 떨어진 곳에 이런 신전을 지었을까? 레바논=글·사진 최정동 기자

1.유피테르 신전의 기둥들. 기단 높이만 2m가 훌쩍 넘는다. 뒤 건물은 로마시대 신전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바쿠스 신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벗어난 버스가 황량한 레바논 산맥을 뚫고 달리다 갑자기 고속도로를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든다.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을 리 없는데 무슨 일인가?

차창으로 놀라운 광경이 보인다. 높다란 교각 사이의 다리 상판이 사라지고 없다. 레바논판 성수대교인가?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교각에 크고 작은 총탄 자국이 무수하다. 얼마 전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이란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민간용 도로를 왜 파괴하는가?

버스는 베카 계곡을 달린다. 레바논의 빵 바구니요, 질 좋은 포도주가 생산되는 곳이다. 그런데 도로 중앙분리대의 가로등마다 군복 입은 인물 사진이 걸려 있다. 이스라엘군과 싸우다 죽은 헤즈볼라 전사들의 영정이란다. 불길한 전망이지만 유대인과 아랍인, 이들 아브라함의 배다른 형제들은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총부리를 거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알베크로 가는 길은 이렇듯 상처투성이다.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

2. ‘임신부의 바위’라 불리는 화강석. 건축 자재로 가공한 돌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3. 바알베크에서 만난 레바논 여학생들. 이들도 전쟁의 공포를 기억한다. 4. 유피테르 신전의 처마를 장식하던 사자상

바알베크 신전이 빤히 보이는 곳에 ‘임신부의 바위’라는 별명의 거대한 돌덩이가 비스듬히 누워 있다. 한 여자가 바위를 어루만졌더니 임신을 했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는데 아마도 율법을 어긴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이리라. 바위의 제대로 된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큰 다듬은 돌’이다. 21.5m×4.8m×4.2m 크기에 무려 1000t으로 747점보기 석 대의 무게와 같다. 현대 공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돌을 옮기려면 4만 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야 한다는데 고대인들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혹시 운반에 실패하고 방치한 게 아닐까?

2. ‘임신부의 바위’라 불리는 화강석. 건축 자재로 가공한 돌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3. 바알베크에서 만난 레바논 여학생들. 이들도 전쟁의 공포를 기억한다. 4. 유피테르 신전의 처마를 장식하던 사자상

바알베크의 유피테르(Jupiter) 신전은 로마세계의 신전들 중 가장 크다. 로마인은 제국의 수도 로마를 치장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은 사람들이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뽑아오기 위해 대형 선박을 건조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이 왜 수도에서 2500㎞나 떨어진 곳에 최대의 신전을 지었을까?

기원전 1세기, 중동지역을 차지한 로마인은 베카 계곡 북부의 바알베크를 주목했다. 물이 풍부하고 두 강이 만나며 지중해와 시리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이어주는 교역로가 만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중요성은 더 컸다. 로마인이 이곳에 왔을 때 도시 이름은 헬리오폴리스였다.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페니키아 시절부터 태양신, 즉 최고신을 섬기는 고대종교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3개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세운 로마인은 피지배 민족을 끌어안아야 했고 유용한 그릇은 종교였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바통을 이어받으며 오랜 문명과 종교적 전통을 가진 이곳에 거대한 신전을 지었으며 직접 방문해 제국의 미래에 대해 신탁을 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 사이, 이 베카 계곡에 로마제국 최대의 신전이 들어선 것이다.

유피테르 신전은 단일 건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전(本殿)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르고 드넓은 광장을 통과해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화강암 기둥들로 이루어진 프로필라이아(신전 입구)를 통과하면 특이한 공간에 서게 된다. 지름 50m의 육각형 마당이다. 같은 시기 로마 신전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인데 건축가는 현지 양식을 차용해 특이한 공간을 창조했다. 이곳을 통과하면 사각형의 널따란 공간이 툭 터진다. 규모가 무려 145m×112m에 달한다. 벽감(壁龕)들이 둘러 있는 것으로 봐서 위엄에 찬 로마의 신들이 내려다보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가운데에는 번제단이 높고 크게 서 있다. 고대인들은 이곳에서 깨끗한 소나 양을 태워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다.

제단이 바라보이는 곳, 7m 높이의 기단 위에 유피테르 신전이 있다. 아니, 있었다. 높이 22m의 화려한 코린트식 기둥 58개가 둘러싼 웅장한 신전. 고대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6개의 기둥뿐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로마시대의 압도적인 신전을 눈앞에 그려볼 수 있다. 기둥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키는 기단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대체 몇 사람이 동원되고 어떤 도구를 써서 저런 돌기둥을 세워 올렸을까?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직접 보면 대단한 규모지만 기둥의 높이는 14.2m다.

유피테르 신전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신전 남서쪽 기단에서 볼 수 있다. ‘임신부의 바위’와 비슷한 크기로 800t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석 3개가 면도날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맞물려 자리하고 있다. 이것을 보고 나면 채석장의 그 큰 돌이 무거워서 운반에 실패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유피테르 신전이 불가사의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이해된다.
 
지진과 기독교도에 의해 파괴
신전은 지진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6세기에 발생한 두 차례의 지진은 큰 피해를 끼쳤다. 1759년에 이 지역을 덮친 강력한 지진은 현재 서 있는 6개의 기둥만 남겨놓고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하기야 지진이 아니라면 무슨 힘으로 이 엄청난 구조물을 해체하겠는가?

바알베크의 신전들은 단기간에 건축된 것이 아니다. 유피테르 신전은 기원전 1세기 후반에 시작해 서기 65년에야 완성되었으며 프로필라이아는 3세기 중반에 지어졌다. 유피테르 신전 곁의 바쿠스 신전은 2세기 전반에 들어섰다. 제국이 번영할 때는 이곳 신전들도 크고 화려하게 확장되었다. 하지만 4세기에 접어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로마의 신들은 서서히 권위를 잃어갔고,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바알베크의 신전들은 폐쇄되는 운명을 맞았다. 제단은 파괴되고 신전 뜰에 기독교 교회가 들어섰다. 아름다운 화강석 기둥들은 콘스탄티노플 성당 건축을 위해 뽑혀갔다.

현재의 바알베크는 원래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폐허 수준이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 이곳에 도착하면 거대한 돌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신앙심이든, 제국의 영광이든, 민초들의 고통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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