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道 정치 실현위해 신념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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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김성호의원

"경선 승복이 화제에 오른 것은 한국 정치가 그 만큼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정치는 신의와 신념이 중요합니다.경선을 받아들일 때는 언제고 경선에서 졌다고 정치 신념까지 바꾸며 불복했던 과거의 역사가 이제는 종말을 고했으면 합니다."

경선 불복만 있던 우리 정치사에 경선 승복의 첫 장을 연 열린우리당 김성호(金成鎬.41)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앞으로 의원회관을 사용하는 것도 이제 석달 남짓(5월30일까지) 남았다.그래서 그런지 사무실은 썰렁했다.

그는 한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 도중 '최근의 정치개혁 파고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라고 강조했다.또 폭로 정치의 종말을 이야기 할때는 큰 목소리로 흥분하기도 했다.팩트를 취재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기자 생활이 정치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그는 "정도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경선 승복 문화를 만들려고 신념을 지켰다"며 "당내 일각에서 비례대표 출마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17대 총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연합뉴스 외신부와 한겨레 정치부 기자를 거친 언론인 출신의 초선의원이다. 17대 총선에서도 서울 강서을 지역구 출마를 준비해왔으나 8일 열린 국민경선에서 노현송 전 강서구청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해 후보자로 선출되지 못했다.그는 전체 선거인단 9백94명 중 31.2%인 3백10명이 참여한 경선에서 1백34표를 얻어 1백70표를 얻은 노 후보에게 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선 과정과 절차를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의원 4년 동안 총선 출마자는 당이 아닌 국민이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민경선제 시범지역으로 서울 강서을이 거론됐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내 정치 신조이기도 하다.경선에 동의할때 (나도 사람이다.) 여론 조사결과가 우세해 당연히 이길 줄 알았다.하지만 당선이 안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경선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에 승복했다.그때나 지금이나 담담하다."

-경선 승복이 갖는 의미는.

"96년 이인제 의원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불복할 때 한겨레 정치부 기자로 현장에서 취재했다.'이래선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이후 이의원 등 정치 영웅이 경선 불복 이후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다.지난 대선때 정몽준 의원도 마찬가지 아닌가.정치인으로서 가장 추악한 모습이었다.정치에 입문할 때 절대 추악한 정치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경선 과정을 자평한다면.

"일부 문제가 있다.처음 유권자 1천명을 표본 추출한다고 했다.실제 경선 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는 3백여명에 불과했다.더구나 내 지지 후보가 많은 20~40대는 극소수였다.표본 추출이 불공정해 경선을 거부(연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하지만 경선에 찬성해놓고 거부한다는 것은 내 정치 신념과 맞지 않아 그대로 진행했다.앞으로는 표본 추출과 적정 투표인수 등에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최소 1천명은 되야 하지 않겠나.당원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도 정당 정치를 무시한 것이다.그리고 경선 투표에서는 과반수를 넘는 후보를 내야 한다.첫 투표에서 과반수가 안되면 1,2위가 겨루면 된다.당에서 이같은 점에 대해 개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5월30일 16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그 다음에는 자유인으로 돌아가 자유스럽게 살고 싶다.그동안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자유스런 것이 많았다.넥타이 정장이 대표적이고...난 청바지가 더 편하다.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한 6개월간은 시베리아 등지로 여행을 하고 싶다.내년 이후에는 통일 문제를 공부할 계획이다.기회가 주어지면 대학에서 통일 관련 강연도 하고 책도 쓸 예정이다."

-본인의 의정활동을 어떻게 생각하나.

"북파공작원 보상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이 가장 보람있다.기자 생활하듯 북파공작원 관련 문건과 사실을 파헤쳤다.앞으로 보상 등 법제화에 힘을 쏟겠다.그리고 줄곧 정치에 뛰어 들면서 생각했던 정치개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신문기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의원 활동중 장단점은 무엇인가.

"기자 시절 사실 관계(팩트)를 확인한뒤 비판적 시각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는 취재 과정이 많은 도움이 됐다.선거(16대)에도 김현철을 구속까지 몰고 간 특종 보도가 뒷바침했다.선거 과정에서 '저 사람이 김현철 구속 시킨 기자래'하는 유권자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수도권 지역은 학력과 경력이 대단히 중요하다.당시 선거직전 민주당이 여러 후보자를 검토했지만 그중에 내 경력(대전고.서울대 정치학과.한겨레 기자)이 가장 좋았다.젊다는 것도 힘이 됐다.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취재원 이외의 관계는 없다.단 한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더구나 내 고향(충북 영동)이 전라도가 아니지 않은가.여러가지 단점이 있더라도 상징성이 있는 장점 하나만 있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김현철 보도와 한겨레 기자 출신(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상징성이 선거를 이기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치부 기자때와 정치인으로 변신하고서 느낀 다른 점은

"정치부 기자 시절에는 소위 선동(이미지) 정치,국민의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에 많이 휘둘린 것 같다.열심히 의정 활동(상임위 등)하는 정치인 보다는 폭로나 선동하는 정치인들에게 아무래도 관심이 많았다.기사 비중도 이에 비례해서 상당히 높았다.이는 정치 뿐 아니라 한국 언론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쇼맨십이 뛰어난 정치인을 훌륭하게 평가해 주지 않았나.정치에 뛰어 들고 보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않지만 묵묵히 의정 활동하는 의원들을 보고 놀란 점이 많다.정치부 기자중에는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는 일부 기자도 봤다.다행스런 것은 이런 부류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난 단 한번도 사적으로 정치인의 집을 찾아간적이 없다.소위 밀실 정치의 파행을 여러번 봤기 때문이다.왜 기자가 정치인의 집을 사적으로 찾아가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기자가 정치인과 유착하면 기자를 그만둬야 한다.국회의원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뇌물로 이어진다.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위 폭로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폭로 정치는 이제 진짜 종말인 것 같다.최근 홍준표 의원의 가짜 CD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검사때부터 소위 한건주의식 폭로로 활동했던 장본인이다.정치 검사가 결국 정치에 뛰어 들었고 그때의 버릇(한건주의)을 못버려 다 끝난 폭로정치로 아직도 승부를 걸고 있다.특히 면책특권을 앞세워 인신공격을 하는 폭로정치는 더 이상 반복해선 안된다.이미 국민들이 알고 있다.그렇다고 면책 특권이 줄어서도 안된다.잘못된 폭로 정치는 국회 윤리위에서 제대로 다루면 된다. 다행스런 점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온 언론인 중에는 폭로 정치인이 없다."

-국회의원의 권력에 대해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의전 절차나 공항 이용때 많이 달라진 신분에 대해 당황하기도 했다.편리한 점도 많았다.한마디로 권한이 엄청나다.권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바로 사용하면 국가의 법을 바꿔 올바르게 나아가게 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국가를 망하게 한다.잘못 쓰면 업청난 폭력이다.최근 서청원 의원 석방건도 그런 경우 아닌가.국민이 준 권한을 자신들이 영원히 세습해야 된다고 착각하는 정치인들 역시 아직도 많은 듯 하다.소위 3김 계파 정치가 끝났는데도 아직도 그곳에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있는가.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물론 정치인으로 남아 활동은 계속 하겠다.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는가.지역구를 바꿀 생각은 없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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