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2.이념보다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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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적은 생활에 편하고 불편한 문제로 처리할 성격이 아니야….』 『전 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해도 찬성할 순 없어요.평생 일본에서 살아가야할 이상 제 인생은 제가 선택하겠어요.』 지난 봄이다.조총련계 작가 김찬정(金贊丁.57)씨는 차녀 초령(椒玲)이 느닷없이 일본국적을 취득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만류하느라진땀을 흘렸다.
조선고급학교 졸업후 일본대학에 들어간 딸이 해외연수때「조선적(朝鮮籍)」에 대한 불신감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이를 버리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북한국적인 「조선적」은 국적이 아니라 하나의 기호 취급을 받고있다.해외여행때는 여권대신 일본정부 발행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그러나 이 여행증명서를 이해해주는 상대국은 드물다.
지난 60년 조총련계 동포는 17만3천명인데 비해 민단은 4만6천명에 불과했다(나머지는 미가입자).
많은 사람이 조총련을 선호한 것은 친일세력을 배제하고 민족주의를 강조한 북한의 선전과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선 경제력등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살아가는데 조총련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조총련은 신용조합등을 통해 상공인들을 지원하면서 적극 포섭활동을 벌였습니다.일본 금융기관에서 외면당한 동포들은 조총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요.당시 민단에 대한 한국의 지원은 미미했어요.』 민단 정몽주(鄭夢周)조직국장의 설명이다 .
조총련은 지난 76년10월 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와 日국세청이 「모든 세금 문제는 조선상공회와 협의해 해결한다」는등 5개항에합의했다고 주장한다(日국세청은 부인).
이는 세금에 대한 유례없는 단체교섭권으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총련의 과격시위활동과 사회당의 로비등에 日세무당국이 굴복한 것이다.조총련계 상공인들 특히 빠찡꼬업자들은 이같은 단체교섭권을 무기로 탈세를 한뒤 그중 일부를 북한에 보내는 것으로알려지고 있다.연간 5백억~6백억엔으로 추산되는 대북송금액 상당수가 이렇게 조달되고 있다고 「현대코리아」 주임연구원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도쿄기독교대학 강사)씨는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조총련 조직의 우세는 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과 한일국교정상화,75년 모국방문사업을 계기로 서서히 역전됐다. 한일국교정상화로 한국적 취득이 일본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훨씬유리해진 때문이다.또 70년대 이후 한국의 눈부 신 경제성장은모국방문사업으로 한국을 다녀간 조총련계 동포 4만6천명을 북한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게 했다.이어 동구와 舊소련의 사회주의몰락은 조총련계 동포들이「조선적」을 버리고「한국적」을 취득하는데 속도를 더했다.조총련은 현재 24만4천명으로 37만1천명에달하는 민단에 완전 역전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 조총련은 북핵문제 해결,북일국교정상화 움직임등을「대반격작전」의 기회로 보고있다.조총련은 국교정상화 이후 주일(駐日)북한대사관이 생기고 해외여행때 여행증명서 대신 북한여권을 소지하게 되는등 민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 한 여건이 해소되면 조선국적회복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조총련은 지난 9월말 각 지방본부의 「학습組」지도위원책임자에게 「조선통일촉진계획」을 시달해 한국각계의 유력자 포섭,한국내김정일(金正日)예찬,김영삼(金泳三)대통령규탄,민단파괴공작 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민단 전향자중에는 이념적인 전향이라기 보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한국적」을 취득했을 뿐인 사람도 상당수 있다.따라서 『북일국교정상화는 민단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민단관계자들은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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