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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재난 등 모든 위기 대비 을지연습 패러다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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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북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연기했던 을지연습 실제훈련이 최근 군(軍)훈련과 병행 실시해 마무리되었다.

지난 40년 가까이 계속돼 온 을지연습은 전시 대비 계획과 민·관·군의 통합방위태세 확립, 한·미 연합작전 능력 배양, 그리고 국민의 안보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해 왔지만 오늘날에는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을지연습은 전시 대비 연습에 국한돼 테러·재난 등 평시 위기대응훈련이 제한돼 있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또한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연습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일반 국민은 물론 공무원의 참여조차도 미흡한 실정이다. 한편 평시 위기관리훈련은 기관별로 각각 실시돼 훈련 내용이 중복되고 인력·예산·노력 등이 이중으로 낭비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을지연습을 전시 대비는 물론 테러·재난 등 평시 위기가 망라된 소위 ‘원 소스 멀티 유스(one-source multi-use)’의 국가위기 종합연습 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재 여기저기에 분산돼 있는 법령·조직·훈련을 통합해야 하고 연습 결과가 정부 부서 평가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법령 정비와 조직 통합은 장기간 소요되므로 우선 훈련 통합만이라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중심이 돼 조속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을지연습이 국가위기를 대비하는 종합적인 연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훈련기간을 매년 1회 일주일 정도로 하되, 훈련 체계는 평시 위기관리 연습과 전시 대비 연습으로 구분해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시 위기관리 연습은 재난, 핵심 기반 보호, 국지 도발과 전쟁 억지, 각종 위기계획 교육 등을 실시하고, 전시 대비 연습은 전시 전환 절차와 인력·차량·건설·기계 등 실제 자원동원 훈련 위주로 실시할 수 있다.

또한 훈련평가 및 통제는 NSC·국정원·행정자치부·소방방재청·국가비상기획위원회 등이 참가한 일원화된 중앙 평가·통제단을 운영하고, 훈련평가는 계량화된 평가기준에 따라 평가해 그 결과를 정부 평가에 반영, 기관장이 위기관리업무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훈련방법도 대상에 따라 중간관리자 이하는 위기 대응 조치에 필요한 실제훈련 위주(Role Playing)로, CEO급들은 정치-군사게임(pol-mil game) 등과 같은 의사결정 연습을 하는 것과 같이 차별화해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대적 상황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부처 간의 상이한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쉽게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지도자의 확고한 의지와 정치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

 9·11 사태에서 보았듯이 탈냉전 이후 국가 위기 상황은 전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국가 위기관리 역시 전시 상황에 국한된 인식을 넘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안보는 단지 전시 대비를 통해서만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 공원 기념탑(塔)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의 참뜻을 다시 한번 깊게 되새겨 볼 때라고 생각한다.

정찬권 국가비상기획위·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