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 KISS A BOOk] 경제 마인드·투자 비법 심기 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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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출판 경향을 보면 시대정신이 드러난다. 요사이 제목에 ‘부자’가 들어간 책이 부쩍 늘었다. 이제는 부의 목표치가 대폭 상향조정되어 10억 열풍 저 너머로 날개 치고 비상한 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박멸되지 않는 끈질긴 바퀴벌레 같은 가난은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건전하게 부를 축적하고 누리는 지혜와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선량한 마음까지 아울러 가르칠 수 있을까. 오늘은 야무진 경제마인드나 투자 비법을 일러주는 이해타산적인 책에서 비켜나,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의 정서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

신시아 디펠리스의 『감자 하나 감자 둘』(보물창고)은 바위투성이 언덕에서 쓸쓸하게 사는 빈궁한 노부부의 이야기다. 막막한 이들에게 난데없이 솥단지 하나가 짠하고 나타난다. 감자 한 개는 두 개로, 양초 한 자루는 두 자루로 늘려주는 100% 수익률의 마법의 솥단지! 어리둥절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이머징 마켓 펀드보다 멋진 솥단지에 금화를 넣어 금세 살림살이를 낙낙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그만 할머니가 솥단지 속으로 홀랑 빠지고 마는데. 자, 과연 할머니는 최초의 인간복제 클론이 될 수 있을까.

언니나 형의 옷을 물려 입는 불평이 뭔지조차 모르는 대다수의 요즘 아이들에게 채인선은 『빨간 줄무늬 바지』(보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대문시장에서 태어나 김해빈의 바지가 되었던 빨간 줄무늬 바지는 동생한테로, 사촌한테로 재활용되면서 토끼 인형과 딸기 단추와 앙증맞은 멜빵 친구를 갖게 된다. 더 이상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낡은 바지는 영영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훈훈한 온정이 동생에게로, 사촌과 이웃에게로 대물림해 왔기에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풍족하게 살고 있는 것이리라.

이번에는 소르카 닉 리오하스의 칼데콧 수상작인 『세상에서 제일 넓은 집』(열린어린이)으로 가보자. 분홍빛 히스 핀 들녘에 두 칸짜리 오두막집이 무슨 연유로 나그네들의 얼린 발을 녹여주는 최고의 너른 집이 될 수 있었는지, 집주인의 호쾌하고 낙천적인 베풂 정신에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책장을 넘기며 어떻게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치열한 ‘헝그리 정신’으로 그 가난의 바닥에서 탈출했는지, 진정한 부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까지 차근차근 화두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지혜로운 엄마의 몫으로 남긴다.

대상 연령은 헝그리 정신에 헝그리 증상을 보이는 9세 이상의 어린이와 발목 껑충한 대물림 바지의 추억을 간직한 엄마들.

임사라<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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