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는 절반, 즐거움은 두 배 (1)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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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 06면

대학로 소극장 넘어 브로드웨이로-500회 맞는 창작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

연말 무대에 오르는 작지만 울림은 큰 공연들

‘마리아 마리아’를 제작한 조아 뮤지컬 컴퍼니의 강현철 공동 대표는 초연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제작비 얘기를 하다 보면 울컥 한다고 했다. “그때 홍보비로 딱 200만원을 썼다. 돈이 떨어지면 회사 사람들이 차를 팔고 집을 팔고 적금을 깨고, 그런 식이어서 제작비 정산은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 제작비로 얼마를 썼는지 모르겠다.”

2003년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처음 공연한 창작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는 그처럼 어렵고 초라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마리아 마리아’는 제작비가 8억원에 달하고 배우도 두 배 이상 늘어난 대극장 뮤지컬이 됐다. 공연계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다는, 초보들이 모여 만든 작은 뮤지컬. 출발할 때 커다란 꿈을 가졌기에 ‘마리아 마리아’는 지금까지 한 발 한 발 먼 길을 올 수 있었다.

‘마리아 마리아’는 성경을 각색했지만 처음부터 종교계에서 도움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앙을 가진 이들을 위한 뮤지컬이 아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성을 지닐 수 있는 뮤지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연부터 함께 해온 성천모 연출은 “몇 년 전 어떤 분으로부터 ‘마리아 마리아’는 세계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우리의 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세 명의 마리아, 그러니까 일곱 귀신 들린 마리아와 돌에 맞아 죽을 뻔한 마리아, 예수의 시신을 수습한 마리아를 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쉬워 보이는 착상이지만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리아 마리아’가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2006년 뉴욕에서까지 공연할 수 있었던 데는 그처럼 익숙한 소재와 새로운 이야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첫걸음은 가시밭길이었다. 공연이 몰려 있는 8월에 시작했기에 극장을 구하지 못할 뻔했고, 홍보비가 없어 스태프와 배우들이 발로 뛰며 포스터를 붙이고, 대표는 극장 앞에서 표를 팔았다. 포스터도 따로 디자인하지 못해 공개방송 무대에 선 배우 강효성을 찍은 사진을 멋없이 박아놓은 초라한 것이었다. 그런 공연에 관객이 차고 넘치는 모습을 보며 강현철 대표는 그저 ‘기적’이라고 감격했다.

“‘마리아 마리아’는 여럿이 함께 만든 뮤지컬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노개런티에 가까운데도 흔쾌히 출연해준 배우들, 아직까지도 극을 고치고 있는 작가와 연출·관객·스태프 모두 고맙다. 3년 전 우리가 2006년에는 뉴욕에 가겠다고 했을 때 모두 믿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 일까지 해냈다.”

강 대표가 ‘여럿이 함께’라고 말한 일에는 이런 것들도 포함돼 있다.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고, 하루 종일 PC방에 앉아 그 동영상을 스팸으로 보내는 일. ‘마리아 마리아’는 돈이 들지 않는 온라인을 공략해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마리아 마리아’는 지금도 다채로운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노래가 강점이기에 OST를 강조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공연장 판매만으로 2만 장이 넘는 CD를 판매했고 컬러링과 벨소리도 공급하고 있다. 포화 상태에 달한 뮤지컬 시장을 넘어 30, 40대까지 관객을 넓히자는 판단 아래 올해는 ‘마리아 마리아’ 동영상을 강남 지역 고급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상영했다. 일본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을 만들기 위해 12월부터는 일본어 자막을 올릴 예정이다.

‘마리아 마리아’는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개념을 뮤지컬에 적용시켜 위험을 줄이고 보다 넓은 미래를 준비하는 사례다. 하지만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마리아 마리아’ 뉴욕 공연 때 인터넷으로 ‘맘마미아’를 예매하려다가 노안(老眼) 때문에 실수로 철자가 비슷한 ‘마리아 마리아’를 예매해 버린 미국인 노부부가 찾아왔다.

그들은 표를 잘못 샀다는 사실을 알고선 도중에 나가려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결국 공연을 끝까지 보고 인사까지 건네고 갔다고 한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뮤지컬.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공연을 꿈꾸고 있는 ‘마리아 마리아’의 소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마리아 마리아’는 성경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이야기를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로마 군대를 상대로 몸을 파는 창녀 마리아는 로마에 보내주겠다는 바리새인들의 제안에 넘어가 예수를 유혹하기로 한다. 어렵게 예수에게 접근한 마리아는 그와 동침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랑을 말하는 예수를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마리아는 묻어 두었던 순수를 다시 발견하고 어떤 제자보다도 진심으로 예수를 섬기게 된다. 그러나 율법을 옹호하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위협으로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리는 고난에 처한다.

2003년 초연한 ‘마리아 마리아’는 예수보다는 막달라 마리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로마군에게 폭행을 당한 마리아는 간음죄로 처형당할 것이 두려워 고향 막달라에서 도망쳐왔고, 하얀 웃옷 분홍 치마처럼 순진했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마리아 마리아’는 붉은색으로 사내들을 유혹하며 살아남은 마리아가 어떻게 다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지 절절한 노래로 들려준다. 마리아가 곤히 잠든 예수를 보며 “당신의 감은 눈앞에서 내 맘을 벗깁니다, 나의 남자여. 나의 모든 것, 나의 모든 생각 알고 있었던 나의 당신”이라 노래하는 ‘나의 남자’는 초연 때부터 인기를 누려온 노래. 남자에 대한 사랑과 스승이자 메시아를 향한 사랑을 굳이 구분하지 않으면서,다만 정화를 거듭하는 맑은 영혼을 드러내는 곡이다. 이와 더불어 ‘마리아 마리아’는 인간의 육신을 지녔기에 두려움과 갈등에 번민할 수밖에 없는 예수에게도 쉬어갈 자리를 내준다. 이 작품에서만은 예수도 이따금 연약한 청년이 될 수 있다.

지금 공연 중인 ‘마리아 마리아’는 주연배우 강효성의 표현대로라면 “이전보다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마리아”가 등장하는 쪽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초연 무대부터 함께했던 강효성이 다시 마리아를 연기하고, 탤런트 황지현과 뮤지컬 배우 차지연도 번갈아 마리아로 무대에 선다.

12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문의: 02-584-2421
R석 7만원, S석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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