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가을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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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민학교에 다니는 딸이 가을 소풍을 간단다.그런데 소풍의 목적지가 산이나 들이 아닌 훼미리랜드라는 곳이었다.학교 앞을 보니 대절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아이들은 산이나 들로 소풍을 가는 것보다 훼미리랜드로 가는 것이 훨씬 즐거운 듯한 표정이다.딸아이도 아주 즐거워해서 소풍을 보내기는 하지만 어쩐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유원지를 가더라도 되도록이면 놀이기구를 태워 주지 않았다.대신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숨바꼭질을 하곤 했는데,딸아이가 즐거워하는 이유는 그토록 타 보고 싶었던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엄마가 들어주지 않았던소원을 학교가 들어주게 되었지만 나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가을소풍을 가는,아니「대절버스를 타고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딸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길에 문득 이오덕 선생님이 엮으신 시골아이들의 글이 떠올랐다.소풍을 가서 선생님과 한참 뒹굴며 놀다도시락을 까먹고 열매도 따고 이름 모를 풀씨도 호주머니 가득 땄다는 얘기였다.
글 속의 아이들은 70년대 아이들이다.꼭 20년전의 내 모습이다.이오덕 선생님의 글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20년전의 나는 전형적인 산골아이였다.
봄소풍이나 가을소풍이나 늘 같은 곳에 갔다.그렇게 똑같은 장소였건만 그곳은 봄소풍때 다르고 가을소풍때 달랐다.물론 여름에다르고 겨울에도 다를 것이다.우리는 봄소풍때면 소풍 간 산에서참꽃을 뜯어먹고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잔대라 든가 오욕강아지.뽀해기 같은 것을 캐 먹거나 꺾어 먹기도 했다.그때도 물론 도시아이들은 달랐겠지만 시골에서는 부잣집애나 가난한 집애나 똑같이 아침에 먹던 보리밥에다 김치를 도시락으로 싸 왔다.부잣집애가 소풍날이라고 특별히 뭘 더 쌌 다면 찐 달걀이고 우리는 감 정도였다.콘크리트 숲과 자동차의 홍수 속에서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도시아이들에게 소풍날 하루만이라도 인공적인 유원지가 아니라 폭신한 흙과 향기로운 풀이 있는 진정한 자연의 품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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