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어스프레이'를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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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 듬뿍
장기공연 예감 좋아요

“내년 말이나 후년 초쯤이면 트레이시로 뮤지컬 무대에 선 박경림을 만날 수 있을거예요.”(박명성)
“박 대표님의 20여 년 뮤지컬 인생에서 최대의 도전이 되는 거죠. 하하.”(박경림)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제작자와 협력 프로듀서로 자리를 함께 한 신시뮤지컬컴퍼니 박명성 대표와 방송인 박경림은 장기공연 계획에 들뜬 모습이었다. 지난 16일 막을 올린 ‘헤어스프레이’가 높은 객석 점유율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확신으로 뭉쳤다’는 두 사람을 만났다.(이하 박명성=성, 박경림=림)  

- 12월 서울에서만 공연되는 뮤지컬이 50편에 이른다. 작품간 경쟁이 치열하다. ‘헤어스프레이’의 매력은 무엇인가.

성=외모 콤플렉스, 흑백갈등 등 작품이 다루는 이야기는 복잡하고 무겁다. 그러나 신나는 음악과 춤이라는 놀이형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오히려 행복감과 희망을 선사한다. 경쾌하고 흥분되는 뮤지컬이다.
림=미국 유학 시절 15번이나 관람할 정도로 이 작품에 매료됐었다. 실제로 판권을 사기 위해 먹을 것 입을 것 아껴가며 유학생 신분으로 1600만원을 모았었다. 뚱뚱하고 못 생긴 여주인공 트레이시가 특유의 낙천성으로 자기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럽고 어려운 유학생활을 위안 받고, 새로운 힘을 얻었다. 내가 받았던 감동이 국내 관객에게도 전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 대본과 음악만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무대· 의상· 소품 등 상당 부문은 국내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그동안 오리지널 무대를 통째로 옮겨온 듯한 공연이 국내 뮤지컬 성장에 한 몫을 해왔다. 제작사측으로선 해외 유명 프로덕션의 마케팅이나 제작과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젠 대본과 음악만 있으면 국내 무대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래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공연이 국내 무대에 맞는 독창적인 라이센스 공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림=브로드웨이 작품과 비교해 이번 작품엔 한국 정서가 반영돼 오히려 공감대가 넓다. 미국적인 색채가 짙은 흑백갈등의 비중을 줄여 스토리부담이 줄었다. 미국인과는 다른 한국인의 유머를 살려 관객호응도 높아졌다.
  
- 작품에 대한 박경림의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림=미국에서 처음 관람할 때 대사의 30~40% 밖에 알아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감동이 밀려왔다. 이번 리허설 때 객석에 앉아 혼자 훌쩍거렸다. 미국에서도 그랬다. 누구보다 먼저 국내에 이 작품을 알리고 싶었다. 한국 판권을 사기 위해 찾아간 브로드웨이아시아에서 판권이 이미 신시뮤지컬컴퍼니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귀국 후 무작정 박 대표를 찾아가 판권 양보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트레이시 역을 꼭 하고 싶었는데, 박칼린 음악감독에게 오디션을 받던 날 감기에 걸려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웃음). 무엇이든 이번 공연에 관계된 일을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이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작품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뮤지컬 전 넘버를 외우고 있을 정도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도 뛰어났다. 이번 공연 제작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박경림은 프로듀서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 직함이 협력 프로듀서다.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인가.

림=작품에 참여하기로 한 이후 2~3년 동안 박 대표와 한달에 두세 번 만났다. 전화는 하루에 수십통씩 한다. 공연에 관계된 일이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고, 하고 싶었다. 티켓 마케팅, 배우 캐스팅, 프로모션, 협찬, 관객 이벤트까지 뮤지컬 제작과정과 마케팅 전반에 참여한다. 뮤지컬 일을 제대로 배우는 기회가 됐다.  
 
- 일을 배우고 있다면, 앞으로 뮤지컬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는 의미인가.

림=박 대표를 찾아갔을 땐 판권도 판권이지만, 트레이시 역을 꼭 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처음 공연을 봤을 때 ‘저 역(트레이시)은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국내 초연 무대에 서는 꿈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대 위가 아닌, 무대 뒤에 서 있는 게 다행이다. 무대 위에서 자기의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트레이시 역에 대한 욕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웃음).  
 
- 박경림에게 트레이시 역을 맡길 계획인가.

성=‘헤어스프레이’는 기획 단계부터 장기공연을 염두에 둔 작품이다. 극장이 결정되면, 곧바로 장기공연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때 박경림에게도 기회가 갈 것이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이해, 꾸준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림=트레이시 역을 위해 살을 안 빼고 있다. 얼굴살이 좀 빠지긴 했는데, 금세 복구할 수 있다.  
 
- 거품론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이 붐이다. 해외 뮤지컬에의 쏠림 현상에 대한 비판도 적잖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림=외국 라이센스 작품이 너무 많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은 좀더 다양하고 좋은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관객의 관심이 높아지면 저예산 뮤지컬, 창작 뮤지컬도 등장하고, 우리 고유의 것을 만드는 힘도 생길 것이다.
성=국내 뮤지컬 역사가 길지 않다. 지금은 새로운 관객 개발이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느냐가 아니라, 관객이 믿음을 갖고 다시 공연장을 찾아올 수 있는 작품을 늘려야 한다.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책임이 크다. 아울러 젊은제작자들의 도전의식과 실험정신이 담긴 소극장 중심의 작품도 꾸준히 시도돼야 한다.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2002년 브로드웨이 초연 후 토니상 8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1960년대 초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뚱뚱한 여주인공 트레이시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렸다. 국내 초연인 이번 공연은 2008년 2월 17일까지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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