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사고 아들생일상 준비하다 참변당한 白正華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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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들녀석의 생일상을 준비해야 한다며 집으로 가지 않고 경동시장에 간다더니….』 21일 오후 서울강동구천호동 가톨릭병원 영안실에서는 성수대교 사고로 희생된 백정화(白正華.33.여.서울중랑구묵2동)씨의 남편 文광동(36)씨가 엄마를 잃은 두남매를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서울강남구역삼동의 모여관 한쪽 귀퉁이에 붙은 간이식당에서 밤새 여관 손님들의 식사주문을 받아 생계를 꾸려온 白씨부부는 이날도 오전6시가 다돼서야 식당일을 마무리했다.부모가 밤에 일을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나 엄마얼굴을 보는 아들 성 호(11.공릉국교4년)군을 늘 마음 아파했던 白씨는 성호군의 생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생일 아침상은 내가 준비해야 한다』며 충혈된 눈을 잠시 붙이지도 못한채 생일 찬거리를 사기위해 경동시장을 지나는 16번 시내 버스에 탔다가 이 날 변을 당했다.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 부모의 사랑에 굶주렸던 白씨는『자식들만은 구김살없이 키우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피곤한 밤일을마치고도 새벽에 집으로가 딸 정희(16.대진여고1년)양의 도시락을 매일 학교까지 싸다주는 억척스런 모정의 소 유자였다.
17세 때인 77년 고향인 전북이리시에서 이웃의 중매로 文씨를 만나 결혼식도 못치르고 신혼살림을 차린 白씨는 프레스공장에서의 사고로 왼손 손가락 4개가 절단된 남편이 장애자란 이유로취직이 안되자 남편대신 노점상과 파출부일을 해가 며 생계를 꾸려왔다. 그사이 딸과 아들이 태어났고 혈육의 정을 모르고 자란白씨부부는 두자녀가 구김살없이 자라는 기쁨에 가난도 잊고 지하단칸 월세방에서 열심히 살아왔다.
사는데 바빠 결혼식을 못올린 白씨부부는 87년 봄 국민학교 4학년이던 딸 정희양이『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다가 아빠 엄마결혼사진이 왜 없느냐고 놀렸다』며 울먹여 그해 3월22일 다니던 교회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시립회관에서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택시타고 남산 드라이브한 것이 전부인 결혼식이었지만 결혼식사진앞에서 즐거워하는 애들을 보고 그렇게 행복해 하더니만….』남편 文씨는 망연히 부인의 영정만을 바라보며 끝내 말을 잇지못했다. 〈鄭耕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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