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로 간 한글계약서 날조? 진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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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공방의 뇌관으로 불려온 '한글계약서'가 23일 국내 반입과 동시에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의 인감증명 등을 제시하며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도장이 인감으로 쓰인 사례를 제시하며 한나라당 주장을 반박했다.

① 계약서에 찍힌 인감은 가짜다?=문제의 계약서에는 이 후보의 서명 대신 도장이 찍혀 있다.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은 22일 "이 후보의 인감(印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이 제시한 이 후보의 인감증명에 따르면 한글계약서가 작성된 시점인 2000년 2월 당시 이 후보가 사용하던 인감은 '이명박인(李明博印)'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한글계약서에 있는 도장은 이 후보의 이름 세 글자만 쓰여 있다. 이런 차이에 대해 홍 위원장은 "계약서에 찍힌 도장은 김씨가 2000년 4월 이후 위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2000년 4월 인감을 잃어버려 새 인감을 등록했는데 김씨가 이를 흉내 낸 도장을 몰래 파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신당 측에서는 "한글계약서에 있는 도장은 2000년 6월 LK-e뱅크가 금감원에 제출한 '증권회사 예비설립허가 신청서'에 찍힌 인감과 똑같다"며 관련 서류를 공개했다. 이 도장이 실제 인감으로 쓰인 사례를 제시한 것이다.

② 이명박 BBK 주식 가진 적 없다?=한글계약서는 '2000년 2월 21일부로 이명박이 소유주인 BBK 주식 61만 주를 김경준에게 매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홍 위원장에 따르면 김경준씨는 이 계약 직후인 2000년 5월 세무서에 BBK의 지분 소유 현황을 보고했다. 이 보고 내역에 따르면 BBK의 지분 소유 형태는 1999년 9월 이후 2000년 5월까지 변하지 않았다. e-캐피털이라는 회사가 전체 지분의 98%인 60만 주를 소유한 상태를 유지했다. 홍 위원장은 "세무서 자료로 봐도 이 후보는 BBK의 주식을 소유한 적이 없다. 갖지도 않은 주식을 팔았다는 계약서는 가짜"라고 강조했다.

③ 3년 만에 갑자기 등장한 계약서?=김씨 측은 21일 한글계약서의 존재를 처음 밝혔다. 반면 홍 위원장은 "김씨가 지난 3년 반 동안 '내 사건은 유력 정치인(이 후보)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게 막아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 법원은 'MB Lee(이명박)가 관련됐다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김씨는 한글계약서를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홍 위원장은 "만약 이 후보와 거래를 보여 주는 이 계약서가 진본이고 김씨가 이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다면 3년 반 동안 왜 제출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계약서 내용 가운데 맞춤법이 틀린 부분조차 논란을 불렀다. 한나라당은 "맞춤법도 자주 틀리는 등 계약서가 조악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당 김종률 의원은 곧바로 "재미동포인 김씨가 한국어에 서툴렀을 뿐이지, 허위라는 증거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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