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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런 청문회라면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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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법사위의 '불법 대선자금 등 진상규명 청문회'는 부실 청문회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야당의 준비 부족에 열린우리당의 방해가 낳은 합작품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입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킨 셈이다.

당초 이 청문회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대상으로 삼았기에 명분이 약했다. 다만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측근 비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것처럼 의욕을 보인 데다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 '5백2억원 대 0원'의 문제점을 지적하겠다는 주장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흘간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것은 "대선 직전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이 盧후보에게 돈 두 뭉치를 직접 건네는 것을 봤다"거나 "안희정씨에게 감세 청탁을 했다"는 진술이 나온 정도다. 그 외에는 풍문을 전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부실 청문회의 책임은 우선 두 야당이 더 크다. 전혀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고, 대선자금 수사의 편파성 문제를 부각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이럴 바엔 왜 말썽을 일으켜 가며 검찰총장을 증인으로 불러냈는지 알 수 없다.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여권의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盧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관계자 등 핵심 증인들은 거의 출석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에도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의 징계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을 악용한 처사이며, 국회를 무시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니 "출석을 가로막는 배후 사령탑이 있다"는 야당의 비판이 나오지 않겠는가. 더구나 열린우리당 의원 20여명은 청문회장에 몰려가 물리적으로 청문회 진행을 방해했고 의사진행을 지연시키기까지 했다.

청문회는 잘만 활용하면 권력견제의 훌륭한 수단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근거없는 의혹 부풀리기에나 몰두해선 청문회 무용론(無用論)이 나올 수밖에 없다. 효율적인 청문회 운용을 위해 증인 불출석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방안 마련도 검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