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신비밀 제대로 지켜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과 수사기관들의 감청 및 통화내역 조회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03년 수사기관의 통화내역 조회는 16만7천41건이라고 한다. 2002년의 12만2천5백41건보다 36.3%나 증가했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얼마 동안 통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 통화내역 조회다. 통화를 직접 듣거나 음성.문자 메시지와 e-메일을 열어 보는 감청은 2003년 1천6백96건이었다고 한다. 2002년의 1천5백28건보다 11% 늘어난 수치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통신비밀의 자유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통화내역 조회의 경우 관할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만으로 가능하다. 법관의 영장을 받아야 하는 감청보다 수월하다. 그럼에도 정통부 집계에는 검사장 승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권력기관이 막무가내로 통화내역 자료를 요구하면 힘 없는 통신사는 따를 수밖에 없고, 사후에조차 검사장 승인서를 보내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국민이 자신의 사생활이 언제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최근 국정원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부당하게 조회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가 아니냐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판이니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얼마 전에는 검찰총장이 "기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를 일절 금지하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다.

인권 문제로 국민과 정부 간에 불신이 생기면 그 정권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어떨 것인지는 뻔하다. 국정원과 검찰.경찰 등은 즉각 법 테두리 내에서만 수사가 이뤄지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차제에 이들 기관 내부의 분위기도 당장 편리하다고 감청과 통화내역 조회를 남용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자제하고 마지막 수단으로만 행사하는 쪽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