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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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베니스 비엔날레와 함께 현대미술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손꼽혀온상파울루 비엔날레가 지난 12일 브라질의 국가원수를 비롯한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됐다.
비엔날레 개최장소는 남미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도시인 상파울루市 중심부에 숲으로 둘러싸여 상파울루의 허파라고 불리는 이비라푸에라공원이다.공원내의 대규모 단독건물에서 오는 12월11일까지 62일간 열리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이번 테마 는「지지체의변이」로서 그간 회화의 근본구조를 이룬 캔버스라는 지지체가 현대미술의 변화속에서 어떤 변모과정을 거쳤는가를 재조명한다는 것이다. 제3세계의 대명사격인 브라질이 1951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최근들어 위상하락을 느끼면서 올해를 재도약의 해로 잡고 있다.따라서 문화계 전체의 지원아래 36억원의 예산을 투입,세계미술의 중심을 끌어오려는 진지한 노력을 여러곳에서 펼쳐보였다.이번 비엔날레에는 브라질의 26명을 포함,세계 70여개국 2백30여명의 작가가 자신과 자국의 명예를 걸고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식은 12일 오후2시 8천평의 건물안에 마련된 18개의 전시실이 일제히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곧이어 오후3시부터는 개막 공식행사의 하나로 채택된 한국작가 조덕현(曺德鉉)씨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대척지(對蹠地)에서』라는 주제로 열린 퍼포먼스는 서로 대척지점에 있는 한국과 브라질의 지리상 특성을 이용해 가상으로 한국으로부터 지구를 관통해 보내진「작품이 들어있는 상자」를 땅속에서 파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는 내용.
한국에서 온 사물놀이패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꺼내진 조덕현씨의 작품은 많은 브라질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다음날 오후3시에 열린 조각가 김영원(金永元)씨의『선(禪)퍼포먼스』도 동양의정신성이 현대예술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보 여줌으로써 서구인들과 남반구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시상제도가 폐지된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남미국가들의 전통정신이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상실되지 않고 미술에 투영돼 작품속에서 민속적인 요소들로 남아있는 것을 강조한데 있다.
이들 남미작가들의 작품은 전시장내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배정돼 더욱 설득력있게 보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주최국인 브라질은자국작가의 작품들에 최대한의 공간과 시설을 할애함으로써 일부 참가작가들로부터 반감을 사기도 했다.
특히 이번 비엔날레는 이념의 붕괴 이후 새로 참가한 동구 여러나라 작가들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이후 어떻게 현대미술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 이후의 시대를 맞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관 후면에 소프트 아키텍처란 이름으로 마련된 비디오전시관은 이탈리아의 파브리지오 플레시,미국의 게리 힐.주디스 발리와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작가로 선정된 풀 가린등 4명의 비디오 작업으로 채워져 첨단과학과 결합된 비디오아트에서는아직까지 제3세계가 소외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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