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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런 식의 폭로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주가 조작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누나 에리카 김이 어제 공개하겠다던 ‘이면계약서’를 내놓지 않았다. 그는 전날 BBK의 실 소유자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임을 입증할 증거를 내놓겠다며 기자회견을 사전 예고했다. 하지만 그는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대신 김경준씨 부인이 나와 남편의 결백만을 주장하고 질의응답도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이 후보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다는 이면계약서의 사본을 꺼내 보인 뒤 “배부는 하지 않겠다”며 다시 집어넣었을 뿐이다.

이 같은 김씨 가족들의 태도는 군색할뿐더러 정의롭지 못하다. 이면계약이 있었고 그 계약서 원본을 가지고 있다면 당당히 공개하고 검찰에 수사를 맡기면 그만이다. 판세를 봐가며 찔끔찔끔, 그것도 본질적인 것을 뺀 부차적인 자료들을 상황 변화에 맞춰 내놓는 것은 진실을 가리겠다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용을 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본을 23일까지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행적으로 봐서 믿음이 가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제출을 늦추는 것은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태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원본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이 후보 측에서 친필을 위장하려고 변조된 사인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사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지만 사인 위조가 발각되면 이 후보의 대선 가도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러잖아도 김씨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혐의를 지고 있고 누나 역시 미국에서 공문서 조작 등 혐의로 기소돼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터라 어느 정도의 불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씨 가족은 더 이상 ‘치고 빠지기 식’ 의혹 부풀리기를 그만두고 가지고 있다는 모든 증거를 즉각 공개하라. 3700만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진실일 뿐이다. 정략적 폭로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이며 신속한 검찰 수사를 가로막아 유권자가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가적 배신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