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주석.총비서 다른시기 취임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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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일(金正日)이 88일만에 얼굴을 나타냄으로써 그의 공식 승계 절차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지난 7월20일 추도대회에 참석한 이후 한번도 공개된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북한당국은 김정일이 상주(喪主)로서근신(謹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온갖 소문과 의혹이꼬리를 물었다.
건강이 나빠 요양하고 있다는 소문에서부터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아니냐,심지어 연금설.사망설등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한번이상 외국 언론에 오르내렸을 정도다.
그러나 이날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같은 의혹을 말끔히 털어버렸다.
과거 쾌활하던 활동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장례식 때보다는 상당히 건강을 회복한듯하다.이날 행사에서의 모습을 보면 승계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날 그의 출현은 김일성(金日成)에 대한 애도에서 김정일 추대라는 국면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한 것같다.
이런 수순은 단군릉(檀君陵)개건준공식을 서두를 때부터 예상됐다.단군(10.11)→김일성(10.16)→김정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의 맥을 잇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다.
이미 20년동안 김일성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김정일이 공식승계를 하지않는 것은 그의 효심때문이라는 것이 이복동생 김평일(金平一)의 설명이다.
북한당국의 선전대로가 아니라도 김일성이 죽자마자 취임 잔치를벌일 수는 없는 형편이다.그만큼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이란 카리스마가 차지하고 있는 무게는 대단한 것이며,김정일로서는 근신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애도기간을 당초 예정보다 훨씬 늘려 1백일로 잡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날 김기남(金基南)의 추도사도 김정일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을 모두 승계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김기남은 김정일을 「우리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당의 수위인 총비서와 인민의 수위인 국가주석을 김정일이 모두 차지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승계 절차는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곧바로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에 취임하는 것이다.김정일이석달동안 칩거(蟄居)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비한 정책과 인사구상을 마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의 추도대회를 보면 북한 핵심 권력층에 서열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서열 2위인 오진우(吳振宇)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당핵심 간부들이 모두 이전의 서열대로 호명됐다.
다만 장의위원 명단에서 뒤에 처져있던 인민군 차수(次帥)들은7월20일 추도대회에서부터 정치국 후보위원과 당비서 사이에 호명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정책 기조는 김일성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따라서 당장 취임하더라도 무리가 없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국가주석은 시정연설을 해야 하고,잔치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리해 치러질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날 나타난 김정일은 아직 활발한 활동을 하기에는 건강이 안좋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그러나 국가주석은 외국인사들을 빈번히 만나야 한다.그럴 경우 그의 건강상태가 외부에 전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애도기간이 끝났다 하더라도 곧바로 취임 잔치를 벌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당총비서는 추대도 비밀리에 할 수 있고,취임도 발표만하거나 아예 발표조차 하지않을 수도 있지만 국가주석은 성대한 행사와 시정연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외부에서는 그의 첫 연설에 개방.개혁정책이 어떻게 반영될지 촉각을 세우고 있어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의 정책 기조는 北-美관계 정상화등에 대한 구체적인일정이 어떻게 잡히느냐에 따라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처지다.대외정책은 물론 경제정책이나 대남정책도 그렇다.
정부당국자도 추도대회가 끝나는대로 비밀 당중앙위원회를 열어 18일께 국가주석과 분리해 총비서로만 취임할 것으로 보고 있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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