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세계 정상 올라도 끝없는 '가이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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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도요타자동차 창립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나고야(名古屋) 본사.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사진) 사장이 강단에 올라 “2년 후인 2009년에는 1040만 대를 팔겠다”고 선언했다. 도요타는 올해 처음으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라설 게 분명하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어느 자동차 회사도 넘보지 못한 1000만 대 판매의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동네 최고의 기업=와타나베 사장의 축사는 그 다음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1000만 대 돌파 후) 우리 지향점은 ‘동네 최고의 기업’이다.” 엉뚱한 목표에 직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초일류 글로벌 기업의 사장 입에서 동네 구멍가게를 연상시키는 경영 목표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동네 최고의 기업은 도요타가 제시한 ‘글로벌 비전 2020’의 핵심이다. “누구든 이가 아플 때 세계에서 가장 큰 치과 병원에 가기보다 자기 동네에서 잘하기로 소문난 치과를 찾는다. 도요타는 2020년까지 그걸 이루겠다.” 창업자 4세이자 핵심 경영진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부사장의 설명이다.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고객이 찾아오는 ‘우리 동네 최고의 기업’으로 뿌리내리겠다는 목표다. 지구촌 최고의 기업이 되겠다는 역설적 표현인 셈이다.

◆가벼운 차=정상 고지를 눈앞에 둔 도요타 사내에선 들뜬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지금이 위기”란 긴장감이 가득하다. 쫓는 입장에서 쫓기는 입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요타의 2020 비전에는 거창한 목표가 없다. 오히려 작은 곳부터 살피며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도요타 개발팀은 요즘 차량 전기 배선에서 구리를 대체할 새로운 알루미늄 소재를 찾기에 분주하다. 알루미늄은 구리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쇠로 된 자동차 좌석 프레임을 가벼운 마그네슘으로 바꾸는 연구도 한창이다. 3만 개에 이르는 자동차 부품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 ‘가벼운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경영진은 향후 10년간 최대의 경영 목표를 ‘차량 무게 10% 줄이기’로 정했다. 현재 1000㎏ 이상 나가는 자동차 무게를 10% 줄이면 연료효율은 3~4% 높아진다. 에너지·친환경의 거창한 목표는 이처럼 작은 부품에서 출발한다. 도요타는 내부 진통을 겪기도 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BRICs’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인도시장에 저가 브랜드 전략을 채택하면서 일어났다.

도요타는 비밀리에 인도시장을 겨냥한 70만 엔(약 550만원)짜리 차 개발에 착수했다. 세금을 포함해도 100만 엔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렉서스를 성공시킨 일부 경영진은 “전 세계에서 어렵게 구축한 고급차의 이미지를 버리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동네 최고 기업’이란 경영 목표는 저가 전략에 손을 들어 주었다. 기노시타 미쓰오(木下光男) 부사장은 “ 전 세계에서 골고루 이익을 거두는 체질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엉뚱한 꿈도 꾼다. 향후 10년간 새 사업으로 채택한 ‘친구 로봇’이 그것이다. 와타나베 사장은 “집안일이나 노인 간병을 지원하는 로봇을 실용화해 주력 사업의 하나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한 간부는 “이 전략이 성공하면 2020년에는 도요타자동차에서 ‘자동차’가 빠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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