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10년 … 한국 경제 '큰손' 외국자본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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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공식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는 지원 조건으로 외국인 투자자유화를 요구했다. 그 결과 은행.외식산업.부동산.자동차 분야 등 곳곳에 외국자본이 들어왔다. 지금 우리 사회엔 외자를 보는 두 시각이 있다. 한국 경제 부활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와 위기를 틈타 떼돈을 벌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비난이 그것이다.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외국자본의 공과(功過)와 실상을 들여다본 시리즈를 준비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전자업체 필립스는 99년 7월 LG필립스LCD에 1조9347억원을 투자했다. 필립스는 일부 지분 매각을 통해 이미 3조원 이상을 회수했다. 현재 보유 중인 주식 가치는 4조원에 이른다. 약 2조원을 투입해 7조원 이상을 만들었으니 투자 수익이 5조원을 넘는다.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투자한 돈은 2조1547억원. 론스타는 올해 일부 지분 매각과 배당금으로 1조5469억원을 회수했다. 나머지 지분은 63억 달러(약 6조원)에 영국계인 HSBC은행에 넘기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대로 매각이 성사되면 론스타의 투자 수익은 5조2922억원에 이른다.

론스타와 필립스는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왔다. 마침 벌어들인 수익 규모도 비슷하다. 하지만 평가는 딴판이다. 기업 투자가 지역발전의 핵심이라며 필립스는 여기저기서 칭찬받기 바쁘다. 반면 론스타는 투기자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필립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 상황을 봐가며 여유 있게 수익금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론스타는 한국 정부에 발목이 잡혀 외환은행 매각을 언제쯤 마무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두 기업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외국자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제조업 투자에 대해서는 일자리 창출 등에서 큰 도움을 줬다며 박수를 보내지만 펀드의 금융회사 투자에 대해선 투기자본이라며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에 대해 최도성(증권연구원장)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론스타와 필립스에 대한 커다란 시각 차이가 이해는 가지만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돈벌이 대상과 방식만 다를 뿐 이익을 내려는 자본의 속성은 똑같다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계 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우리 경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지연이 외자를 한국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펀드매니저)고 본다.

외국인 투자자에게 불확실성은 곧 리스크(위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법적인 문제를 확실히 하겠다"(김용덕 금감위원장)는 입장이다. 관련 재판이 끝난 뒤에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할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진행 중인 재판의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으면서도 이런 재판을 반외자 정서의 산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의 반발을 불식시켜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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