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소나무보다 아름다운 작은 풀이 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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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수험생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수능시험을 잘 본 사람도 있고 못 본 사람도 있겠지만 다들 장합니다. 이미 수시로 합격해 느긋한 사람도 있겠고 논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최선을 다했고, 다한다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설령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어떻습니까. 대학에 안 간들 또 어때요. 대학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도 않는걸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못 해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이라 하고, 기껏 취업해도 ‘88만원 세대(비정규직)’라 한다잖아요.

겁주려는 게 아닙니다.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지요. 그저 남들처럼 대학 다니다 남들처럼 졸업해서는 결국 남들처럼 백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러분이 사회에 나올 때는 정말 그렇게 될 겁니다.

나만이 갈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돈 되는 길만 좇다가는 인생 걸음이 꼬이고 맙니다. 눈앞의 큰길보다 10년 후 요충지로 통할 길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 그 분야의 최고가 되세요.

철강왕 카네기 아시죠. 엄청난 돈을 벌었다가 그 돈을 모두 사회에 돌려주고 떠난 훌륭한 사람입니다. “부자로 죽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죠.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대여, 언덕 위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떨기나무가 돼라. 떨기나무가 될 수 없다면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풀이 돼라.”

모든 사람이 선장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선장만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배에는 기관사도 있어야 하고 항해사도 있어야 합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해 실력을 키우면 훨씬 더 큰 배의 기관사나 항해사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작은 배의 선장보다 많은 돈과 명예도 거머쥐게 될 테고요.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탈무드』에 나오는 얘깁니다. 옛날 삼형제가 살았습니다. 이들은 각각 마법의 망원경과 마법의 양탄자, 마법의 사과를 가지고 있었지요. 어느 날 맏형이 망원경으로 왕의 포고문을 보게 됐습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린 공주를 낫게 해 주면 공주와 결혼시키겠다는 내용이었지요. 삼형제는 둘째의 양탄자를 타고 왕궁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고는 막내의 사과를 공주에게 먹였습니다. 공주는 씻은 듯 나았습니다. 왕은 기뻐 잔치를 벌였지만 고민에 빠졌습니다. 삼형제 중 누구를 사위로 맞이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주와 결혼한 건 막내였습니다. 왜일까요. 맏형과 둘째에게는 여전히 망원경과 양탄자가 남아 있지만 막내는 자기의 전 재산인 사과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무슨 분야든 1인자가 되려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게 이야기의 교훈입니다. 남들이 하는 걸 기웃거리고 따라 하느라 이것 남겨 두고 저것 떼어 내고 하다가는 역량이 분산될뿐더러 시기도 놓치기 십상입니다. 끝내 최고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한길로 달린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떤 길을 걷거나 뛰더라도 주변의 산꽃 들꽃을 밟지 않게 조심하세요. 공부하느라 눈 돌릴 틈이 없었겠지만 지금 대선 정국이 시끄러운 건 아시죠. 거칠 게 없어 오만하기까지 했던 대선 선두 주자가 별생각 없이 저질렀을 과거의 흠집(들) 탓에 바쁜 걸음에 발목이 잡히고 있습니다.

그런 겁니다. “이 정도쯤이야.” “남들 다 하는 짓인데.” 무심코 행한 작은 과오들이 결정적 순간에 부메랑이 돼 내 머리를 때릴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한순간이라도 자신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마세요. 그래서 한 점 흠결 없는 소나무, 떨기나무, 작은 풀이 되세요. 그래서 흠집투성이 선배 세대를 마음껏 비웃어 주세요. 그때 우리 선배 세대들은 부끄러움 속에 얼굴을 붉힐지라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겁니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