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 한 번 받고 100만원 물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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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전남 담양군의 한 야산에서 고교 1학년생인 A군(16)이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군은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받은 소설 파일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혐의로 고소당했다. 경찰 수사 결과 A군은 이 문제로 부모에게 심한 꾸중을 들은 뒤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A군은 이전에도 한 차례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돼 합의금을 지불하고 문제를 마무리한 적이 있었다. 담양경찰서 문영상 수사과장은 “저작권 보호가 강화되는 추세에서 이런 불상사가 생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김영진(가명·26·여)씨는 최근 경기도 분당의 집에 경찰의 출두요구서가 날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 8월 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해 있을 당시 신씨가 판타지 소설 ‘제로니스’를 다운로드받은 것 때문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소설 한 편 다운로드받아 본 것뿐인데 고소까지 당한 데다, 학생 신분으로는 많은 액수의 합의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에 신씨는 요즘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이양순(가명ㆍ42)씨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씨는 3년 전 인터넷 공유사이트에 ‘산돌폰트’라는 한글서체를 올린 것이 문제가 돼 곤욕을 치렀다. 뒤늦게 컴퓨터를 배운 전업주부 이씨는 호기심에 자신이 다운로드 한 자료를 공유사이트에 시험삼아 업로드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는 지난 5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위반’으로 고소장이 접수됐으니 경찰서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관은 “고소 취하를 위해서는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해 합의를 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씨는 “3년이나 지난 일인데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파일을 올린 것이 아니다.

저작권자에게서 사전에 한 차례 경고도 받지 않았는데 고소부터 하느냐”며 항변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이씨는 법무법인 관계자에게서 합의금으로 150만원이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전긍긍하다 친정에서 돈을 빌려 겨우 합의했다.

영화·음악·소설·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았다가 적발돼 고소당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분당경찰서 김동지 경제1팀장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 경찰서에서만 한 달 평균 100여 건의 고소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고소당한 경우 합의하면 검찰은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한다. 저작권법 위반이 워낙 많다 보니 합의금에 ‘적정가격’이 정해져 있을 정도다. 중·고생 30만~50만원, 대학생 100만원, 성인 150만원이다. 학생들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여서 부모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을 태우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비슷한 경험을 한 네티즌들이 카페를 만들어 고민을 상담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현재 네이버 카페 ‘파일공유·저작권 단속 관련 대책토론’에는 2만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 한두 편 다운로드받았을 뿐 돈벌이를 한 것도 아니고 파일을 퍼뜨리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큰 죄가 되느냐”고 항변한다. 일부는 “대규모로 기업화된 공유사이트 운영업체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으면서 힘없는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윤진원 부장검사는 “영화나 음악파일을 한 번 다운로드받은 것만으로 형사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파일을 대량으로 복제해서 퍼뜨리거나 공유한 행위가 드러나면 경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거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문제는 네티즌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불법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웹하드나 일부 공유사이트를 이용할 때 자신의 파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게 ‘공유폴더’를 지정하도록 돼 있는 경우 자신도 모르게 ‘무단배포’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분당경찰서 김동지 팀장은 “저작권을 침해당한 개인이나 회사가 청소년을 고소부터 하기보다는 1차적으로 경고 e-메일을 보낸다든가, 언제까지 파일을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는 식의 유예조치나 예방활동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소유자를 대신해 고소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어린 학생들이 많이 고소당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면서도 “저작권 침해를 당한 쪽 입장에서는 불법 다운로드와 배포로 받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배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한국P2P네트워크협회(www.korea p2p.org) 김준영 회장은 “법률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이나 주부 등 힘없는 개인을 상대로 고소한다고 압박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몇몇 법률사무소는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고소를 일삼거나 법률사무소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합의금 장사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윤진원 부장검사는 “영화·음악 파일 등 지적재산권의 불법 유통행위는 심각한 범죄다. 네티즌들이 이런 인식을 하도록 관계 당국의 지속적인 계도활동이 필요하다. 초범인 경우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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