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6자회담에 도사린 함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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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2차 6자회담이 2월 25~2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다. 지난해 후반부터 진행돼 오던 물밑 조율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리는 회담의 전도가 밝다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 오던 '동시행동 일괄타결안'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돼 '선 핵포기'를 고수해온 미국과의 의견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설사 미국이 양보해 북한이 원하는 방식으로 타결한다고 해도 많은 함정이 남는다.

'동시행동 일괄타결'이란 북한 핵폐기의 대가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확실한 대북 안전보장 약속과 함께 정치적 인정과 경제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며, 그 첫 단계로 북한이 일단 핵시설들을 다시 동결하면 미국은 중유 제공을 재개하고 각종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타결되는 경우 우선 걱정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합의 위배 가능성이다.

북한에 있어 대량살상무기는 중요한 체제유지 수단이다. 다시 말해 외부 압력을 뿌리치는 수단으로서, 내부통치를 위한 권위의 상징으로서, 또는 외화 가득 수단으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에 북한이 현 체제를 고수하는 한 언제든 비밀리에 핵개발을 재개할 가능성이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농축 프로그램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2002년 10월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해 현재의 긴장국면을 몰고 왔던 북한이 이제 와서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는데, 이는 농축 문제를 6자회담에서 제외함으로써 핵타결 이후에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예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둘째, 북한이 핵개발을 확실히 포기하는 경우에도 많은 문제가 남는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화학.생물무기와 세계 6위권의 미사일 파워를 그대로 보유하려 할 것이며, 이에 따라 향후 이런 무기들을 놓고 미국과 또 한바탕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안전보장을 약속한 이상 '우상화' '계급사회' '통제사회' 등으로 대변되는 북한식 독재체제를 마음놓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목표인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라면 평양 정부의 '조금 주고 모두 받기' 전술이 성공하는 것이 될지언정 결코 만인이 바라는 북한 문제의 해결방식이 될 수는 없다. 부시 행정부가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체제유지 욕구에 있다. 북한도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수용하면 대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경제를 개선시킬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미국이 영토 확장을 원하는 팽창주의적 침략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미국과 맞설 필요도 없어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개혁과 개방이 '자본주의적 오염'을 가져와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경우 실권해도 야당으로 생존하지만,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경우에서 보듯 우상화와 독재로 통치해온 정권이 실권하면 곧바로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 북한이 체제 유지에 집착하는 한 핵 문제는 내리면 물려 죽는 '호랑이 등타기'나 멈추면 쓰러지는 '외바퀴 자전거 타기'와 다름없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핵타결이란 북한의 민주화를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두번의 회담으로 모든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협상에 나서는 당사국들은 북핵 문제의 본질을 유념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로 미국과 맞서는 무모한 '수퍼파워 게임'을 벌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체제로의 변신을 시작할 때 한반도에 드리워진 검은 핵그림자는 물러날 것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