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전망의 정치학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호 27면

사회 각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들이 요구받는 것 중의 하나가 미래의 모습에 대한 전망과 예측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100% 정확한 미래예측 기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래예측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미래전망에 관심을 갖고 예측력을 높이려 하는 이유는 인간의 불안감 때문이다. 우리는 늘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과 만난다. 되풀이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인간이 불확실성(uncertainties)과 조우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경험 속에서 법칙과 패턴을 찾아 불확실성과 맞서려 한다. 인간의 행위와 그것에 의한 사회적 현상들을 분석하여 다양한 이론과 모델을 만드는 작업도 예측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회귀분석이나 시계열 분석이란 기법도 개발했고, 과학적 분석 기법의 한계 때문인지 석학들의 직관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델파이 기법이란 것도 고안해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불안감을 해소할 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변수의 돌발성도 있고 인간 행위의 복잡성 때문이다. 또한 인간 지식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지역이지만 동시에 가장 불안정한 곳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동북아의 역사에는 협력과 조화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더 많았다. 그 추세가 관성처럼 남아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세계의 어느 지역, 역사의 어떤 지점에서건 낙관과 비관적 전망이 공존해왔다. 동북아 미래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군비경쟁 추세, 일국 중심의 안보론, 지역 수준의 협력안보제도의 부재 때문에 대립구도가 부활할 것이라고 본다. 이에 비해 낙관적 전망은 세계적 추세의 협력적 인식,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동북아 지역경제협력의 구조, 전쟁의 무용론 등을 이유로 내세운다.

지금은 비관과 낙관의 갈림길에 서 있다. 가까운 미래에 지역질서의 조형과 관련된 결정적 변수의 하나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여부와 방식에 있다. 6자회담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동북아에서도 다자주의적 해법이 뿌리내릴 가능성이 크다. 다자간 안보협의체도 6자회담의 성공을 기반으로 구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동북아를 평화적 질서로 이끌 촉매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평화를 강구하는 방법 중에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되어온 경구(警句)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에는 유비무환의 지혜도 있고 “안보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라는 조심성도 숨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안보를 오로지 개체(국가) 수준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편협성이 내재되어 있다. 각 국가가 전쟁을 준비하는 추세로 가게 되면 군비경쟁은 불가피해지고, 안보는 더욱 취약해지는 모순이 숨어 있다. 따라서 평화학 연구 종사자들은 개체 중심의 안보론이 낳는 안보딜레마를 지적하면서 “평화를 원하면 우선 평화로운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창안해야 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그 오랜 경구를 대체하고자 한다.

미래란 우리가 그 시점에 다가가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측력의 불완전성을 고려할 때 “미래에 관한 가장 정확한 예측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란 말도 마냥 허황되게 들리지는 않는다. 미래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지와 미래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북아가 지금까지의 비극적 역사를 딛고 새로운 평화적 미래를 창조하게 될지, 아니면 갈등의 역사를 되풀이할지는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동북아의 미래를 구상하는가에 달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