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해지고 싶거든 여기로 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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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12면

거북,1993

20세기 어느 낮, 그는 홀연히 TV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향해 주사위를 던졌다.
이 비디오 주사위는 뉴욕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서울과 도쿄와 파리와 로마의 포로와 아고라를 구른다. ‘빠다 맛’ 나는 끈끈한 빛은 귓전에서 소리가 되고, 혀끝에서 타액에 섞이고, 땀구멍마다에서 송글거리다 요령소리와 함께 유쾌하게 증발한다.
허공으로 흩어진 빛은 그날 오후 늦게 색색(色色)이 바람으로 돌아와 늙은 TV 안에서 냄새를 피우면서 중얼 거린다.
‘내게 말을 걸어봐. 내게 말을 걸어봐.’
주사위가 구르다 멈춘 뒤 나올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이 우연을 오래도록 인간들은 신의 뜻으로 여겨왔다.

방송 80년 KBS특별전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자화상,1989(위)와 공산주의의 종말,1990(아래)

유쾌하게 놀고 만나는 백남준
우연을 교직하는 그는 일상과 권태와 직렬(直列)을 경멸하면서 내뱉고 있다.
‘유쾌하라. 유쾌하고 싶거든 여기로 오라.’
이 비디오 뜰에는 황홀한 재기와 리얼리티한 몽환과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범벅이 된, 광시곡이 넘쳐난다. 그는 정해진 대로, 정답이 있는 양 생각하고, 단답형으로 꿈꾸는 걸 한 번 더 야유한다. 고리타분한 장르와 경계에 갇힌 사람들에게 그는 일갈한다. 죽은 그가 일어나 말한다.

‘냄새는 소리고, 비디오는 촉각이고, 청각은 시각이다. 눈이 코가 되고, 귀가 혀가 되고, 입이 항문이 되는 거다. 네 감각에 사기를 쳐봐.’

그에게 단일한 감각은 차라리 무감각이다. 시간을 채색하고 공간은 곤죽이 되어 엿가락으로 늘어난다. 소리는 빛이 되어 눈을 현란하게 찌른다. 지금 여의도에서 냄새나는 비디오는 시간을 섞고 뒤집어 공간을 확장,소멸시키고 있다. 그는 문화 혹은 문명 또는 예술 소비자에게 혼성으로 다가올 것을 주문한다. ‘(네 말로) 내게 말을 걸어봐. (내 말투로) 네게 말을 걸어봐.’ 그 순간 소비자는 생산자가 된다. 오직 그것뿐이다. 그는 놀고 있다. 비디오 뜰에서 비디오 주사위를 굴리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다국어 구어체로 읊조린다.

TV침대,1972(왼)과 비디오스쿠터,1994(오)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말하라. 느낄 수 있는 걸 다 섞어라. 논리와 회로 틈바구니에서 놀자. 다만 허방에 매몰되지는 말자. 아니면 기어 나오는 법을 일순 깨닫자. 자, 이제 이 바보상자를 판도라 상자로 바꾸어버리는 거다.’

‘테레비’무당 백남준
그는 상자를 흔들어댄다. 판도라, 저주 받은 그 여자의 손길과 넋을 빌려. 서쪽으로 세 번, 동쪽으로 아홉 번, 북쪽으로는 스키타이 썰매를 타고 가서, 남쪽으로는 눈감고 스물 몇 걸음을 옮겨간다. 굴려서 나온 주사위 눈만큼이라고 불러도 좋다. 뚜껑을 여는 건 그이자 소비자, 관객 내지는 구경꾼이다. 여는 행위가 이뤄지는 순간 이들은 참여자가 된다.

그렇다. 문질사회에 카오스적 코스모스, 또는 코스모스적 카오스 제스처로 요령을 흔들어대는, 양말로는 아나키적 비디오 마법사, 동아시아적으로는 ‘테레비’ 무당, 그가 백남준이다.

1만5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에 기어든 이가 돌벽을 칠할 안료로 붉은색 점토에서 추출한 오커를 골라 발랐듯, 그는 20세기 물질 가운데 대중소비사회를 만들어낸 TV를 대담하게 붓으로 삼았다.

붓질은 대중 사이로 휘어지면서 ‘눈으로 먹는 사탕’ TV를 복합적 상형문자로 조형하는 연장이자 매개체이자 콘텐트로 빚어낸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제는 여기서 정점에 이르되 바로 녹아버리고 만다.

알다시피 영상은 흐느적거리더니 액체로 흐르다가 짖어댄다. 그에게 위험함이란 없다. 다만 마력이 있을 따름이다. 진지한 장난 앞에 시간은 고체로 굳어 잠시 망설이다 이내 사타구니 사이를 타고 휘발하고 만다.

오늘은, 조선총독부 경성방송국 호출부호 JODK(도쿄AK, 오사카BK, 나고야CK) 80년(한국방송 80년)을 이름하는 자리(KBS특별전시실)에서 세상을 향해 발신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선 ‘삐끼’ 자화상
브라운관 안에, TV안경을 쓴 청동 얼굴, TV화면을 놀리던 자석, 거꾸로 앉은 불상, 헝클어진 비디오테이프, 장난감 피아노 뚜껑에 혁(革)과 싸구려 지구본에 청색으로 쓴 선명한 명(命)이라는 글씨, 차고 다니던 시계, 전구와 전기선줄, 넝쿨식물과 나일론 천으로 만든 조화, 구겨놓은 인쇄물 따위가 빈틈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얼핏 정돈 모르는 어린아이 서랍 수준이다. 이 ‘자화상’이 TV 주사위들의 요체다. 명(命)자를 굳이 TV안경을 쓴 자화상과 흡사하게 써넣고 있는데 늘 창조와 변화를 꿈꾸던 가치체계를, 멜빵에 달고 산 시계는 건망증과 당뇨를 앓던 그에게 명줄을 이어주던 물건이다.

나머지 구성물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세계관의 출발점과 다양한 물질문명에 변주를 가한 매개체와 일상을 응축하고 있다. 그는 고작 이까짓 것들로 ‘1984’년 벽두 아침 조지 오웰에게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고 키들거리면서 인사를 하거나 동과 서는 만날 수 없다는 키플링에게 ‘바이바이’라고 외쳐댔다.

‘자화상’은 브라운관 아래로 뻗은 열두 가닥으로 꼬인 전선만이 동적인데 여느 작품에 비겨 퍽도 정적이다.
백남준을 향한 가장 흔한 질문, ‘어떻게 봐야 하지?’를 자화상은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더 ‘삐끼’다. 답은 간명하다. ‘니 맘대로 보세요.’

심리적 척추관 협착증이나 허리디스크 환자는 누울 수 없는 ‘TV침대’ 곁에서 잠시 눈을 붙여도 좋다. 거실 인터넷이 고장 나거나 연결이 느릿한 사람은 1974년 ‘일렉트로닉 하이웨이’에서 발상한 ‘W3’를 바라보면서 기도하라. 주문은 다음과 같다.
‘내게 말을 걸어봐, 네게 말을 걸어봐.’

TV는 백남준의 집
‘M200/비디오 벽’ 앞에 서면 살아 있는 벽화를, TV(94개)가 붓임을 새삼 알리라. 166개 TV가 등 무늬를 만들고 있는 ‘거북’에서 불로장생을 읽었다면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약방으로, 거북선을 떠올렸다면 애국자로, 생태보호와 느림이 생각났다면 제가끔 알아서 하면 된다. 다만 토끼 말고는 달리 연상되는 게 없다면 서둘러 ‘자화상’ 앞을 스쳐지나 뒤돌아보지 말고 나가서 안내서를 한 권 살 필요가 있다. 그마저 싫다면 집에 가서 동물다큐멘터리를 조금 더 보라. 그 또한 피할 수 없이 TV다. 거기가 백남준 집이다.

셋방살이가 지겹거나 새 집을 짓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는 제목은 조금 어려운 듯하지만 한번 보기만 하면 대번에 어떤 집인지 알 수 있는 ‘인플럭스 하우스’ 근처를 서성거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캐리커처를 잘 그리고 싶은 지망생은 ‘요셉 보이스’와 대화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오는 것도 권할 만하다. ‘요셉 보이스’는 왼팔에 썰매를 매달고 서 있다. 벗이 그립거나 한 사람에게도 제법 쓸 만하다. 보이스는 백남준에게 최고의 벗이자 스승이었다.

옆에 서 있는 ‘거트루드 스타인’은 눈으로 들어라. ‘비디오 샹들리에X’와 ‘세라미스 공중정원’ ‘넝쿨 숲’은 이름 그대로 풀이나 덤불 비슷한 따위를 뒤집어쓰고 있다. 여기서 고상한 걸 얻지 못했다면 ‘비디오 스쿠터’를 타라.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TV가 알아서 달려갈 테니까.

경계 없는 현대정신, 백남준
정리하자. 머리가 뻑뻑하고, 새로운 걸 구하고 싶고, 감각을 재창조하거나 솔직히 좀 튀고 싶은데 내공이 달린다거나 밥상이 게임기로 보인다든지, 노래를 영상으로 바꾸고자 한다거나, 때로 조금 천재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사람에게 백남준은 명약이다. 혹시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확인하고 싶거나 비슷한 증세로 천재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에게 더 없는 기회다.

전시장에 오지 않고도 얼마든지 백남준을 만날 수 있다. 다 접고, 하물며 화장실에 갔다 와서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만나는 Mtv 뮤직비디오의 실로 뜻 모르게 빠른 화면에, 사려다 만 프라다폰·아이팟폰 오직 표면에도 그는 깃들어 있다.

그에게 경계란 없다. 모든 경계는 그에게 와서 출발선이 되었다. 그의 발상과 비디오는 고체화한 형상과 가치에 침을 뱉는다. 그에게 비관은 없다. 모든 갈등은 그에게 와서 화해의 부호로 송출되었다. ‘ㅂㄷㅇ ㅂㄷㅇ.’

그가 서울에 왔다. 놀랍게도 정작 백남준 작품을 본 이는 많지 않다. 이번 전시작은 상당수가 유럽에서 건너와 처음 공개되고 있는지라 다시 보기 쉽지 않을 게다. 그럼에도 그의 고향사람들은 다들 그를 잘 안다고 함부로 생각한다. 백남준의 넋은 지구를 떠돌다 잠시 서울 한 귀퉁이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독일 ZDF TV 국제연대 본부장 다그마 스코파릭은 주저없이 그는 독일인이기도 하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백남준은 유럽과 미국과 아시아를 넘는 작가다. 그는 독일에서 예술혼을 키우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독일 사람들은 대개 그를 알고 있다.”

죽어 찾아온, 그 사람 백남준에게 ‘테레비 밥상’을 헌정하고 싶다. 문자로 옮긴 비디오 제사상이라고 해도 좋다. 그라면 저승에서 손을 내밀어 이 젯밥을 능히 떠먹고 남으리라.


서해성씨는 소설가이자 ‘고구려전’과 ‘광복60년기념전’, 시민방송, 기적의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기획과 실행을 해왔고, 지금은 이주노동자가족을 위한 문화인권 프로그램 ‘아시아스타트’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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