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한국 검찰·아시아나 'LA공항 007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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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한국으로 송환된 김경준씨가 서울중앙지검에 들어가기에 앞서 취재진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한국행은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 속에 진행됐다. 현지 취재진과 일반 승객의 눈을 피하기 위해 김씨와 호송팀은 이른바 '벙커'라고 불리는 기내 승무원 휴식칸에 숨어 서울까지 온 것으로 알려졌다.

15일(LA 현지 시간) 오전 8시 LA공항 출국장 앞에는 양복을 입은 한국인 두 명이 나타났다. 가슴에 신분증을 단 미 법무부 관계자와 함께였다. 김씨를 송환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검찰 수사관들이었다. 이날 한국행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포함해 4편. 공항에 대기하던 취재진은 김씨의 행방을 찾느라 분주해졌다. 4편의 항공기 탑승권까지 모두 확보하고 탑승 현장을 추격했지만 김씨의 모습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이륙 한 시간 전 미리 탑승=LA공항 출국장에서 취재진들이 김씨의 행방을 추적하던 오전 11시쯤 김씨는 호송팀과 함께 비행기 탑승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12시10분발 인천행 아시아나 OZ201편이었다. 호송팀은 일반 범죄인 송환 때보다 두 배나 많은 8명이었다.

호송팀은 일반 출국장이 아닌 공항 계류장(그라운드)을 이용해 김씨를 비행기에 태웠다. 호송팀에 소속된 검사는 김씨의 탑승 직전 한국에서 가져온 체포영장을 집행, 김씨의 신병을 정식으로 인수했다. 통상 탑승 게이트 앞에서 이뤄지던 영장 집행이 비행기 바로 옆에서 이뤄진 것이다.

김씨가 탄 아시아나 항공 OZ201편은 '원격 탑승'을 했다. 승객들은 버스를 타고 비행기가 있는 계류장까지 20분 가까이 이동해서 탑승하는 시스템이다. 호송팀과 미 법무부 측은 김씨의 탑승 사실을 감추기 위해 탑승 게이트에서 비행기와 바로 연결되는 탑승 방식을 피했다고 한다. 미 법무부 관계자는 "취재진이 탑승구까지 들어와 확인을 하는 바람에 송환 일자와 탑승 시간이 계속 변경했다"며 "샌프란시스코 공항(LA공항에서 차로 6시간 거리)에서 신병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비행기에 칫솔과 치약 등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가방과 성경책, 읽고 있던 책을 갖고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치소 감옥에 갖고 있던 서류들은 송환 전 모두 가족들에게 인도된 것으로 전해졌다.

◆승객 눈 피하려 '벙커'에 숨어=호송 작전은 기내에서도 철통 보안을 유지했다. 김씨는 일반 승객이 탑승하는 동안 기내에서 보이지 않았다. 김씨를 본 승객들이 이 사실을 비행기 밖으로 알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비행기에 먼저 타 있던 호송팀과 김씨는 승객들이 탑승하는 동안 '벙커'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김씨가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사실을 안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고 아시아나 항공 관계자는 전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에도 김씨와 호송팀 일행은 한참동안 '벙커'에 머물렀다. 김씨를 호송한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승무원들의 휴식 공간인 '벙커'에 있다가 이코노미석 오른쪽 맨 뒷자리에 앉아 왔다"며 "웃으며 개인적 얘기를 하기도 했으나 기내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고 전했다.

LA=김승현.장연화.신승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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