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오디션에 좀 와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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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러브’라는 뮤지컬이 있다. 기슬린 기다슨이란 아이슬랜드 출신 연출가가 만든 작품으로 실버 타운에서 벌어지는 노인들의 사랑 얘기를 따스하면서도 콧끝 찡하게 전하는 수작이다. 내년 중반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국내에도 라이선스 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진다. 내년 1월 재개관하는 세종문화회관 중극장에서다.

출연 배우는 모두 20여명. 실버 타운이 배경인지라 주·조연은 물론 단역들까지 모두 노인들이다. 문제는 노래와 연기를 고루 소화할 수 있는 원로급 뮤지컬 배우가 거의 없다는 점. 국내 뮤지컬 역사가 짧은 탓에 연륜이 쌓인 배우가 부족하고, 젊은 관객층을 노리고 제작되는 뮤지컬이 대부분이라 노인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적었던 점 등이 이유다.

그래서 국내 제작사인 에이콤은 오디션을 통해 신인(?) 노인 뮤지컬 배우를 발굴하기로 했다. 통상 배우 오디션은 인터넷을 통해 공고를 내는 게 일반적. 그러나 아직 노년층이 인터넷 이용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배우 섭외는 커녕 오디션 알리는 것부터 삐걱거리게 된 셈이다.

에이콤측은 ‘저인망 작전’에 나섰다. 우선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서 발간한 ‘탤런트 수첩’에 나온 50대 중반 이상 배우 100여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다. 대다수 중년 배우들은 쌍수를 켜고 반겼다. 탤런트 박근형(67)씨는 “드라마 두 개 뛰는데 ‘더블’ 배역이라도 꼭 하고 싶다. 노래? 나 왕년에 돌아가신 이주일씨랑 행사 많이 뛰었어”라고 자신했다. 사미자(67)씨는 “트로트라면 나 진짜 한곡 하는데, 오디션 꼭 봐야 하니?”라고 말했고, 전양자(65)씨는 “내가 원래 성악과 지원하려다 집에서 말려서 못했지 않니. 원래 우리 어머니랑 큰 맘 먹고 크루즈 여행 가려고 했는데 다 포기하고 올인할께”라고 답했다. 가수 태진아(53)씨도 “카메오라도 꼭 출연하고 싶다. 밤무대 뛰는 친구들 다 소개시켜 주겠다”며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기성 배우뿐 아니라 실력있는 아마추어를 발굴하기 위해 발품도 팔고 있다. 온누리·사랑의 교회 등 교회 성가대에 찾아가 포스터(사진)를 붙이고 다녔고, 이화여대 출신 할머니 합창단 연습실로 찾아갈 예정이다. 백화점 문화센터·미사리 라이브 카페촌도 공략 대상이다. 에이콤 송경옥 기획실장은 “어르신들의 열기에 어지러울 정도”라고 전했다. 오디션은 다음달 3일 열린다. 02-575-6606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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